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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유럽/이탈리아

폼페이

by 개굴아빠 2013. 1. 30.

서유럽 여행기부터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사진 백업용이다보니 사진이 좀 많다.

어쩌다 참고삼아 들어오는 분들은 스크롤의 압박은 견디셔야 할 듯하다.

가족 여행으로 갔던 서유럽 여행기 블로그는 순전히 가족용이다.

덧붙여 이건 2010년 여행기인데 네이버에 쓰던 것을 네이버 정책이 맘에 안들어 이글루에서 다시 쓰다가 이글루는 정치적 편향성이 너무 강해 티스토리에서 다시 완전히 새로 쓰는 중이다.


로마 인근인 피우찌(Fiuggi)에서 묵은 곳은 "소나무 호텔"이라는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였다.


당연히 우리 나라 저가 패키지 여행자들이나 배낭 여행자들 중 조금 형편 나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할만한 곳이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는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우선, 아침 식사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 크로와상이라고 하기 조금 힘든 빵 두개와 life is egg 한 개, 그리고 소 누린내가 살짝 나는 우유나 묽은 오렌지 쥬스가 전부라 일행들 대부분 아침 식사는 하는둥 마는둥 했었다.


일정상 다른 숙소에서는 하루 이상 머무르지 않는데 여기서 사흘을 묵었으니 그 사흘 동안 아침 식사를 하는 내내 고역이었던 것이다.



처음 독일에서 먹었던 아침 식사는 아래 사진과 같다.



이랬던 아침 식사가 저 모양 저 꼴이 되다 보니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는 대부분, 심지어 집사람마저도 아침 식사를 포기했던 것이다.


그리고 "소나무 호텔"에서는 김치를 식당에서 먹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호텔에 외국인들도 제법 있었으니까 이해는 간다만 외국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나야 뭐 늘 그렇듯 잘 먹었다만...... ^^;;



일정에 따라 오전은 폼페이 관광, 오후는 나폴리와 쏘렌토 그리고 옵션 관광으로 카프리섬 관광이라 우선 폼페이로 향했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한 후 현지 가이드가 안내를 시작했는데 이 현지 가이드가 개신교 신자인 모양인지 가톨릭에 대한 폄하가 심한 발언이 계속되는 통에 상당히 듣기 거북했었다.


이 뒷날은 로마 교황청 관광이었는데 좀 심하다 싶을 정도.



매표소에서 바라본 폼페이.


언덕지대인데도 이곳이 2천 년 동안 묻혀 있었다는 얘기다.


흙 좀 많이 파내야 했었겠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기슭에 있던 고대 도시.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수비오 산 근처에 있으며, 사르누스(지금의 사르노) 강 어귀 북쪽으로 흘러든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돌출부 위에 건설되었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번영하였으나,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격렬한 폭발에 의해 헤르쿨라네움 및 스타비아이와 함께 매몰되었다. 1748년 유적이 발견되어 그리스 영향을 강하게 받은 로마 도시의 일상생활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고대도시들의 유적들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독특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늘날의 폼페이 시(인구 2만 5,081명[1991])는 고대도시의 동쪽에 있으며, 순례요지인 산타마리아델로사리오 바실리카가 있다.(출처:다음)









2천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상수도 시설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박석으로 포장된 도로로 연결된 골목들이 잘 정비되어 있어 당시 폼페이가 얼마나 번성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집집마다 벽돌로 된 화덕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그 당시의 풍족했던 생활상을 짐작케 해 준다.



도로는 대부분 포장이 되어 있었고 그 위로 마차가 다녔다고 하는데 도로의 폭은 대부분 마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이.


요즘으로 치면 일방 통행 도로인 셈이다.


길 한 가운데 놓인 큰 돌은 마차의 속도를 제어하기 위한 방지턱인 셈.




폼페이는 환락의 도시였다고 하는데 도로의 표지석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도로 바닥에 새겨진 사창가 방향을 가리키는 직관적인 형태의 표지석이다.


건물의 벽에도 새겨져 있었다.





도로 바닥에는 깊게 패인 홈이 있는데 마차 바퀴가 만들어놓은 자국이라고 한다.



여러 개의 화덕이 있는 이 곳은 식당이었을 거라고 추측된다.




곡식을 저장하는 일종의 뒤주라고 하던가 여하튼 그런 거.







폼페이의 가장 큰 도로.


마차 두 대가 지날 수 있다.



당시의 호화 주택이었던 듯.





주택의 정원에 놓여진 청동상.



좀 작다.



저택 바닥에 새겨진 그림.


색이 다른 모래를 사용하여 만들었다던가 그랬었는데......



저택의 입구에서 파는 기념품.


폼페이 시대에 그려진 벽화를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뭐였더라?


구들장이었던가?


여하튼 먹고 사는 것에 지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아주 풍족하지 않으면 만들기 힘든 구조물.








수세식 화장실이었다고 한다.




폼페이시 오팔팔 거리 19번지?



바로 아래에서부터는 공중 목욕탕.




햇빛이 드는 창과 천장의 물이 홈을 타고 흘러내리는 장치도 마련해 두었고



돔에 맺힌 물기가 벽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해 두었고




미적인 부분도 신경을 써 두었다.


여긴 옷장(락커)였을 거라고.




찬 물이 퐁퐁 올라왔다(을 거라)고 하는데 아마도 목욕의 마지막 단계에 사용되었을 듯.



여기까지 공중 목욕탕 내부.



아래 사진부터는 유물 보관소.






국사책에서 보았던 베수비오스 화산의 폭발 현장에서 죽은 사람과 동물의 석고본이 여기에 전시(?)되어 있었다.


발굴팀이 도시 위에 쌓여있는 화산재를 걷어내는 중 곳곳에 구멍이 있어 여기에 석고물을 흘려넣고 굳은 후 파보니 저런 모습이 나오더라는 것.




제우스 신전.










이쪽도 무슨 신전이라는 것 같았는데 내 메모리는 휘발성이라......




제우스 신전 앞에는 넓은 공터인 공회장(foro)가 있으며 그 앞쪽으로 이어진 언덕에 여러 채의 가옥들이 보였다.



이렇게 해서 폼페이 관광을 마쳤는데 폼페이는 대충 이런 정도로 끝내도 될 듯했다.


질 낮은 아침 식사로 인해 허기가 제법 졌을 일행들이 기다리던 점심.


그런데 현지식이라고 되어 있었다.



지중해의 강한 햇살 속을 다니느라 갈증이 심한 사람들에게 제공된 시원한 생수.


버뜨, 테이블 당 한 병 씩만.



주 요리는 봉골레 스파게티.



그리고 해물 튀김(오징어와 새우)이었는데 튀김은 그냥 저냥이었지만 스파게티는 우리 입맛에는 영 아닌 듯했다.



후식으로 나온 오렌지는 크기도 작을뿐 아니라 푸른 기가 돌고 껍질도 딱딱하여 맛이 없을 거라 예상했었는데 이건 대박.


우리 나라처럼 수입된 오렌지가 아니라 현지에서 나는 것인가 보다.


맛있었다.


식사 후의 일정은 나폴리와 쏘렌토를 둘러보는 것인데 옵션 관광으로 카프리섬 관광이 들어 있었다.


옵션 관광 중 다른 것과 비교가 되지않는 가장 비싼 가격(1인당 15만원)이라서 갈 때부터 이걸 하나마나 고민을 많이 했었다가 대부분의 후기들이 지중해 바다의 풍광과 아슬아슬하게 산을 올라가는 버스의 곡예와 1인용 케이블카(곤돌라)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만한 돈을 지불하고 갈만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우리 가족은 포기.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어른들만 카프리섬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커서 가면 된다는 것이었겠지.


어쨌든 우리 가족과 아이들 몇몇만 남았는데 역까지 가서 카프리섬으로 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조금 아쉽기는 했다만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면 남은 우리도 나폴리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었으니까.


45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이지 않고도 말이다.


카프리섬이야 다음에 가면 되지.


근데 언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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