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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필리핀

여행기 전체

by 개굴아빠 2012. 12. 23.

aq.co.kr에 올렸던 2002년 필리핀 보라카이 가족 여행기 전체입니다.

원본 링크 : http://aq.co.kr/info/philippines/2497

 

 
개구리네 가족 여행기
여행 후의 우리 가족이 
얼마나 더 서로를 생각해 줄 수 있게 되었고 
하는 등의 뒷 얘기는 아마 한참 후에 써야 할 것 같다
.
 

작성자 : 개구리아빠 




흡족한 여행이었다. 보라카이도 좋았고 히든벨리도 좋았다.
사실 3년 전에도 보라카이를 꿈꾸고 준비를 하였으나, 개인적인 사정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 결혼 10주년을 핑계삼아 막무가내로 밀어부친 여행이다. 실제로 개구리엄마는 가기 사나흘 전까지도 '가도 그만, 가지않아도 그만.'이라는 식이었으니 여행 전에는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스텝까지 밟은 셈이다. 
출발 50일 정도 전 태국을 목적지로 수정하고 이전에 모아두었던 자료들은 한 켠으로 치워둔 채 태국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이 썩 좋지는 않은 개구리엄마와 8살 개구리를 데리고 많이 걸어야 할 가능성이 많은 태국을 간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는 생각에 출발 30일 정도 전 다시 보라카이로 여행지를 수정했다. 
나름대로 경비를 산출한 후 모자라는 부분은 개구리엄마 몰래 더 꼬불쳐 놓기도 하고 은근슬쩍 떠보기도 하고. 요즘 회사(?) 경영상태가 좋지 않아 경비 염출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젊은 분들은 혼자 떠나는 것이니 70 - 100 정도면 되고, 신혼이신 분들이야 어차피 가는 신혼 여행 조금만 더 무리하면 되는 것이지만 나같은 경우 3가족의 여행 경비를 혼자 마련해야 하므로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오! 신이시여, 대한민국의 모든 가장들에게 가족들을 위해 쓸 수 있는 눈먼 돈 한 뭉치 왕창 내려 주소서!" 어쟀거나 경비는 마련이 되었었고 떠날 수 있었으므로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기로 하자. 
여행 형태는 아무래도 경비를 줄이기 위해 패키지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내 여행만은 베테랑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가족에게 관광이 아닌 여행을 무작정 맡겨놓을 수는 없었다. 비용이 다소 힘에 부치더라도 자유 여행으로 다시 노선 변경. 충분한 정보를 구할 수 없었던 히든 벨리는 여행사에 전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히든 벨리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여행팁에 적어놓은 히든 벨리에 관한 나의 글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 정도의 결정을 내린 시점이 출발 20일 정도 전이다. 이 시점에서부터 여행사와 전화를 통해 직접 상담에 들어갔으며, 내용 확인이 꼭 필요한 경우 이메일로 다시 내용을 보내 줄 것을 주문하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쓰며 준비를 진행해 나갔다. 
접촉한 여행사는 3군데이며 저렴하다고 판단되거나 신뢰가 간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해당 여행사에 의뢰를 하였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 비해 약간은 복잡한 준비과정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국제선은 ok항공, 국내선 및 마닐라 1박은 넷투어, 보라카이 3박과 마닐라 2박과 히든벨리는 스페이스투어가 되며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보다 상세한 정보는 다음 글에 적기로 한다. 

주요 경비는 아래와 같다.
■ 국제선(왕복) 세부퍼시픽 280,000 x 2 + 210,000 x 1(개구리) ok항공 
■ 국내선(왕복) 아시안스피릿 100$ x 2 + 50$ x 1 넷투어
■ 마닐라 1박 뉴월드 80$ x 1 조식, 엑스트라 베드 포함 넷투어 
■ 보라카이 3박 레드코코넛 85$ x 3 조식 포함(성인 2인만) 스페이스 투어 
■ 마닐라 2박 다이아몬드 85$ x 2 스페이스 투어 
■ 히든 벨리 80$(가이드 비용) + 1700peso(차량 대여비) + 500peso(기사 팁) 스페이스 투어(조금 애매함, 현지에서 가이드와 컨택한 것처럼 되었음, 스페이스 투어 서울 본사에서는 160$ 달라고 하였음) 
나머지 추가되는 경비에 대해서는 선택 사항이 되므로 내용 중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여행사] 
처음에는 모든 내용을 ok항공에 맡기려 하였다. 보라카이 정보를 얻기 위해 처음 가입을 했던 '다음'의 '자떠필' 카페의 방장인 simon님이 ok항공의 직원이며 simon님의 글들에서 인간적인 향기와 신뢰감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러나, 국제선 항공만 ok항공에서 결정하고 나머지 사항들은 simon님에게서 넷투어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매우 좋은 가격(국내선 성인 100$, 아동 50$, 다이아몬드호텔 70$)을 받을 수 있어 매우 흡족했었다. 그러나, 며칠 후(출발 사흘 전 금요일) 넷투어의 다른 직원(김기량씨)이 전화를 걸어와 반드시(! 김기량씨에게 세번네번 질문하였으나 '8살 아이가 있으면 반드시'라고 했다.) 엑스트라 베드를 넣어야 하므로 다이아몬드는 105$이며 마닐라 첫 1박은 트레이더스에 방이 없지만 엑스트라 베드 넣고 뉴월드에서 같은 가격으로 해 주고 돌아올 때의 마닐라 2박도 뉴월드가 다이아몬드와 같은 급이며 요즘 그쪽이 더 좋은 것으로 얘기하므로 그곳으로 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일단 뒷날 오전으로 확정을 미룬 후 넷투어의 친절한 권유(?)를 받아들여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으나 뒷날 아침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다른 여행사 몇 군데에 확인을 해 본 결과 12세 미만은 엑스트라 베드는 옵션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넷투어에 대한 신뢰가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국내선도 자리 확보가 어렵다며 넷투어에서 매우 애를 쓰는 느낌을 주려 했었으나 우리가 탄 국내선은 분명히 자리가 몇 개 비어 있었다. 함께 갔었던 꼬뿌니님도 별 어려움없이 마닐라 현지에서 국내선을 구할 수 있었으며 우리보다 30분 일찍 보라카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예약을 취소하려 하였으나 일정에 차질을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는 국내선과 마닐라 첫 1박만 예약을 확정하고 서둘러 다른 여행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다. 국내선 티켓과 바우처를 국제선 공항에서 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마닐라 현지 직원은 뉴월드 호텔 라운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만약 함께 갔었던 후니유니님의 가이드님이 없었더라면 마닐라 공항에서 꼬박 밤을 샐 뻔 했다. 20분 이상을 헤맨 후 후니유니님의 가이드님이 전화를 넣어준 덕분에 넷투어 직원이 호텔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홈페이지가 깔끔한 느낌을 주어 전화를 넣은 스페이스투어에서는 토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넷투어에서는 뭐가 그리 힘든지.) 레드코코넛과 다이아몬드에 대한 가격 정보를 전화로 회신해주었으며 상대적으로도 저렴한 가격으로 판단되어 레드코코넛 75$, 다이아몬드 85$로 예약을 마쳤다. 
그러나, 20분 정도 후 레드코코넛 방이 85$이라며 다시 수정 가격을 알려왔는데, 다른 곳에서 80$이라는 방은 한 단계 낮은 방이라며 85$을 강요(?)했다. 가서 보니 한 단계 낮은 방이라는 것은 싱글 하나, 더블 하나의 방으로 우리가 묵었던 더블 둘의 방은 굳이 필요가 없는 방이었다. 하지만, 베란다의 조경이 좋았으므로 이건 용서하기로 하자. 
레드코코넛에서는 들어가고 나갈 때 방카와 트라이시클과 짐꾼을 제공한다. 그러나, 투어스페이스의 무성의로 보라카이에 들어갈 때는 방카, 트라이시클 짐꾼을 사용하는 바람에 160페소를 쓸 수 밖에 없었으나 이 또한 내가 직접 체험해 보려 했던 것이므로 특별히 사면하기로 한다, 단, 160페소만 되돌려 준다면. 
히든벨리 투어도 투어스페이스가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었다. 넷투어에서는 1인당 90$, 다른 여행사에서는 70$을 제시했지만 투어스페이스에서는 성인 60$, 아동 40$을 제시했었다. 이도 알고 보면 터무니없는(?) 가격이지만 모르면 도움을 받아야 하므로 크게 시비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히든 벨리에 관한 것은 여행팁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알고 있으면 좋을만한 것들] 

여권 발급 
사진을 찍을 때는 반드시 '여권용'이라고 하자. 이전의 여권용 크기와는 맞지않다. 동반 아동용 사진은 반드시 2매씩 준비. 위의 내용 때문에 도청을 두 번이나 더 갔어야만 했다. 사진 크기가 맞지않아 한 번 더, 동반 아동 사진이 모자라 한 번 더.

국제선 항공
탑항공이 가장 싼 것으로 판단된다. 일주일 날짜 지정 대한항공 26만원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영업부마다 약간씩 가격이 다를 수 있다. 굳이 우리처럼 30일 오픈을 고집할 필요없는 경우(가족 여행이라면 대부분 일정이 확정되어 있을 것이다.) 일자 지정하고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를 타고 편히 가자. 

지방에서 출발할 경우 
부산에서 출발하는 뱅기는 할인 항공권이 거의 없다. 있어도 비싸다. 버스나 기차 또는 자가용을 이용해도 차액은 충분히 빠진다. 우리 가족의 경우 창원이므로 부산에서 출발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나 부산 출발일 경우 48만원 인천 출발일 경우 28만원이었다. 20 + 20 + 16 = 56만원. 자그마치 56만원이나 국제선에서 차이가 난다. 단, 하루를 더 빼야 하지만 어차피 저녁 출발이므로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숙소 
여행사를 통하는 것이 저렴한 것으로 생각된다. 레드코코넛에서 1박 더 할 경우 얼마냐고 물어보자 레드코코넛에서는 주저없이 115$이라 그랬다. 메일을 보내 확인한 니기니기에서도 여행사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시해 왔다. 
"Our standard rate is US$112 for airconditioned room and US$90 for fan cooled room, per room, per night. The extra bed cost US$12 per night." 
"에어콘 룸 표준 가격은 112$이며 엑스트라 베드는 12$을 더 내 놓아야 한다." 무시무시한 가격이다. 여행사에서 아동은 무조건 엑스트라 베드 어쩌구 하면 '농담 따먹기 하냐?'라고 쏘아붙여 주자. 12세 미만은 엑스트라 베드가 필수 사항이 아니다. 

숙소에서의 식사 

우리 가족처럼 아동을 1명 동반할 경우 엑스트라베드를 추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추가 식권을 굳이 발급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레드코코넛에서도, 다이아몬드 호텔에서도 개구리의 식사비용을 청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엑스트라 베드가 포함된 뉴월드에서는 개구리 식사비를 달라고 했다. 앞에 [여행사] 부분에 적지 못한 내용이다. 체크아웃하다 캐셔가 시비를 거는 바람에 카운터에서 넷투어에 다시 전화하여 확인 받느라 20분 이상을 지체했다. 넷투어의 무성의가 다시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내 휴대품 
스위스 군용칼(맥가이버 칼)은 휴대하지 말자. 아무 생각없이 열쇠와 함께 옆구리에 차고 갔다가 인천 공항에서 걸려서 마닐라에서 찾느라 무척 고생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망고 깎아먹는 일 외에는 쓰이지 않는다. 

세부 퍼시픽(국제선) 
비행기가 작다. 5J 195는 좌우 2열씩 4열, 5J 194는 조금 더 커서 좌우 3열씩 6열이다. 그랜저는 편하지만 비싸다. 티코는 싸지만 시끄럽고 진동이 심하다. 
식사 후 게임을 한다. 구두, 운동화, 동전, 안경, 책, 모자를 준비해 두자. 승무원이 얘기하는 것을 먼저 치켜 들면 선물을 준다. 되도록이면 요란한 제스춰를 취하는 것도 요령이다. 돈으로 쳐 봐야 1000원 짜리 남짓한 까만 손가방을 받을 뿐이지만 여행 후 얘깃 거리가 된다. 기념도 되고. 

물놀이 
아이가 있다면 10 - 15분 가량 뒤편으로 걸어 화이트비치 뒤편의 불라복이라는 곳으로 가라. 파도가 거의 없고 멀리 나가도 바다가 얕아 아이들과 놀기에는 그만이다. 겁이 많은 아이가 있으면 호핑투어(스토클링) 하기 전 얕은 바다에서 스노클링이 무섭지 않고 너무나 재미 있는 것임을 미리 가르쳐 주라. 스노클링 할 때 개구리가 약 2초 가량만 바다속을 들여다 보고(그것도 억지로) 배로 다시 올라갔다. 우리 돈 만원 정도면 중국산 스노클링 장비를 살 수 있다. 

음식
주문하기 전에 "짜지 않게"라고 반드시 미리 말하라. 거의 모든 음식들이 말도 못하게 짜다. 소금값 따로 주어야 할 정도이다. 해피 아워에 칵테일 시킬 때는 한 잔을 시키면 두 잔이 나온다. 두 잔 시켰더니 네 잔 나와 마시느라 애먹었다.(사실은 아니다. 무척 행복했다.) 

비디오 촬영 
스노클링할 때 비디오로 찍는 것을 잊어먹기 쉽다.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시간나는 대로 틈나는 대로 마구 찍어라. 사진도 마찬가지다. 국내 여행만 그런 줄 알았더니 해외 여행도 역시 사진과 비디오만 남기는 마찬가지이다. 

기념품 쇼핑 

랜드막 백화점 3층에 가면 필요한 모든 민속 공예품이 거의 다 있다. 지하로 가면 망고도 살 수 있다. 선물용 망고는 출국할 때 면세점에서 케이스가 예쁜 것을 살 수 있다. 가방이 크다면, 무겁긴 하지만 유리로 된 식기들을 사는 것도 좋겠다. 커다란 화채볼에 유리잔 10개 합친 세트가 만원도 안된다. 개구리엄마 무척 탐을 냈지만 결국 하나도 사지를 못했다. 왜냐고? 랜드막은 8:30'이 마감 시간이다. 랜드막에서 공예품 몇 가지 산 후 제일 마지막에 나왔다. SM몰에서 토속적인 기념품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것으로 생각된다. 물건의 질도 쇼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운송 수단 

지프니를 타고 싶다면 커리어우먼처럼 보이는 아줌마에게 물어보라. 어떤 걸 타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줄 것이다. 1인당 4페소이다.(한 택시 기사는 6페소라고 했지만 지프니 기사는 더 달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얼떨결에 타긴 했지만 행선지에 내리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특히 아줌마들이 친절히 가르쳐 준다. 
택시를 탈 때에는(특히, 유명 음식점 앞에서) 반드시 메터를 켰는지 살펴라. 켜지 않았다면 "메뜨로 딸랑!(따갈로그로 '메터기 켜 주세요.'이다.)"이라고 한 마디 해라. 깜빡했다면서 얼른 메터 켠다.(나쁜 눔들) 그리고, 메터 택시 타는 거 어렵지 않다. 
참고로 큰 보도로 길을 걸어다니는 것은 전혀 문제 없어 보인다. 여행 가이드들은 매우 위험하다고 싸돌아 다니지 말라고 말들을 하는 것으로 알지만 좌판에서 우리집 개구리는 사탕도 사먹고 졸리비에서 햄버거도 사먹고... 물론 함께 다니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 문제 없었다. 마닐라 만 근처에서 어슬렁거릴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호텔에서 지켜 봤지만 조금 위험해 보였다. 

흥정 
무조건 "마할"("비싸다" '마랄'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한데 다른 사이트에서 '마할'이라고 적어 놓아서.)이라고 하라. 'last price'라고 하면 그 정도 선에서 흥정을 그쳐도 될 것 같다. 그래 봐야 우리 돈으로 얼마 안 된다. 돌아올 때 어쩔 수 없이 호텔 택시를 탔지만 400페소 달라는 것도 250 주고 왔다. 

고급 식당 
음료 식사 포함 1인당 500 페소(13,000원) 정도 잡으면 넉넉할 것 같다. 다이아몬드 스카이라운지에서는 창가에 앉을 경우 무조건 800페소 이상 시켜야 한다. 그보다 적게 먹어도 800페소를 내고 나와야 한다. 칵테일 한 잔, 맥주 다섯 병, 과일 하나 시켰더니 800 페소 조금 넘었다. 손해 안보고 나왔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신청곡은 어디서나 무방한 것으로 보인다. 이하우이하우에서는 주제 넘지만 노래 직접 했다. 그것도 반주해 준다는데 기타 빌려서 직접 반주하며 노래했다. 다른 나라 애들(중국, 일본)이 너무 설치는 것 같길래. 그랬더니, 함께 있던 우리 나라 단체 관광객들 무지 좋아했다. 다른 나라 애들 기 팍 죽여 줬다고 너무 좋아 했다. 명색이 10년을 시립합창단원으로 활동했었는데 노래로 다른 사람 기죽이는 거야 장난이지.^^;; 

현금
페소와 달러는 절대 같은 곳에 두지 말자. 달러를 페소로 착각하고 지불할 수 있다. 달러는 복대에 페소는 지갑에 보관하자. -_-;; 50peso 대신 $50 받은 놈만 그 날 운수 터진 거다. 

다음 글에서는 진짜 여행 후기를 쓰고자 한다. 추천만 팍팍 눌러 준다면. 

[출발 전, 출발, 마닐라 도착]
공항에서 사온 산미겔 수퍼 드라이 마시며 글 쓰는 중. 

출발 한 달 전. 
굳세게 맘 먹고 결혼 10주년(5월 30일) 핑계로 보라카이행을 결심했다. 아직 개구리 엄마랑 개구리는 모른다. surprise trip(surprise party도 있으니 surprise trip인들 없으랴.)으로 하고는 싶지만 개구리 엄마가 학교에 있다보니 그건 힘들 것 같다. 일 주일 정도 전에 이야기 해야겠다. 

반 달 전 
입이 워낙 가벼워서리 결국 개구리 엄마에게 말을 하고야 말았다. '이 남자가 미쳤나'라는 표정이다. 반응이 없다. 그래도 여권 발급 받아야 한다고 하니 주민등록증은 내 준다. 사진 찍어 달랬더니 사진은 이틀 후에나 찍어서 준다. 긴가민가 하는 눈치다. 

일주일 전(월요일) 
웬만한 준비는 끝났다. 오늘도 환율이 내려갔으니 환전은 조금 미루기로 하자. 제일 은행 사이트에서 환전 할인 쿠폰을 인쇄했다. 아쿠아에서도 할인 쿠폰들을 인쇄했다. 

6일 전(화요일) 
환율이 조금 올랐기 때문에 정오쯤 제일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였다. 1,294원.(요즘은 1,250원 이하이다.) 집에 돌아오니 경비실에서 등기물을 찾아가란다. ok항공에서 보낸 항공권이다. 개구리 엄마도 1주일 연가를 받아 놓았다. 

5일 전(수) 
환율이 10원 가량 내렸다. $1,500 환전했으니 하루 사이에 15,000원 정도 손해본 셈이다. 

4일 전(목) 

동생이 수트 케이스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도 개구리 엄마는 짐 쌀 준비도 안한다. 준비가 어딨냐. 오늘도 밖에서 학교 샘들이랑 술마신다고 나더러 짐 대충 알아서 싸랜다. 

3일 전(금) 
허걱! 꼬뿌니라는 아가씨에게서 멜이 왔다. 날짜가 같댄다. 개구리 엄마에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슴이 마구 설렐라 그런다. 넷투어에 예약한 사항이 조금 어긋나고 있다. 아무래도 그쪽에서 처음에 너무 낮게 가격을 부른 모양이다. 개구리 때문에 무조건 엑스트라 베드를 넣어야만 한다고 한다. 

2일 전(토) 
스페이스 투어를 통해 필요한 예약을 모두 마쳤다. 오전 중에 돈도 모두 입금했다. 그동안 모아둔 자료를 인쇄해 하드 커버를 만들어 휴대하기 편하게 했다. 저녁에 퇴근한 개구리 엄마가 동료들이 사준 거라며 커플 티를 꺼내 보인다. 이 나이에 무슨 커플티라고 얘기하다 여행도 못가고 서거할 뻔 했다. 저걸 둘이 맞춰 입고 가야만 하다니. 꼬뿌니님 얘기를 꺼내려 하니 개구리 엄마가 내 멜을 훔쳐보았다며 다 안다 그런다. -_-;; 

1일 전(일) 
서울 형집에서 하루 자고 출발하려 하였으나, 부처님 귀빠진 날이라 어머니 모시고 절에 가서 절밥 먹느라.돌아올 때 비행기 시간 때문에라도 차를 가지고 공항으로 직접 가는 게 낫겠다. 형집에 세워두면 주차료 50000원 가량이 절약되긴 하지만 말이다. 저녁에 보니 후니유니님의 글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다. 

d Day(월) 
오전 10시에 출발했다. 후니유니님과 통화하고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군데의 휴게소에서 쉬면서 아쿠아에 올린 질문에 대한 답도 살펴 보며 가다 보니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어질 것 같다. 5시 30분쯤 공항에 도착했더니 후니유니님이 기다리고 있다. 꼬뿌니님도 만났다. 마닐라에서 공부한다는 아가씨 한 분이 자기 짐이 무게 오버 된다며 같이 좀 부쳐 달랜다. 
후니유니님과 꼬뿌니님은 먼저 대기실로 들어가고 우리는 조금 개기다 들어갔다. 검색하는 곳에서 맥가이버 칼이 걸렸다. 마닐라 가서 찾으라며 쪽지를 준다. 세부퍼시픽 항공의 내부는 일반 고속 버스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좌우로 2열씩 모두 4열이다. 승무원은 모두 필리핀인이다. 영어와 따갈로그로 방송을 하더니 한국어(?)로 안내 방송도 한다. 옆에서 개구리가 그걸 듣더니 자꾸 킥킥댄다. 
이륙. 진동이 심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근교 도시의 불빛들이 너무 예쁘다. 저녁 비행기는 타보지 않았던 개구리 엄마는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다. 비행기가 평형을 잡자 기내식이 나온다. 개구리는 "치킨 플리즈"라는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얼굴만 벌겋게 달아 있다. 혼자서는 묻지 않아도 "아빠, 치킨 플리즈하고 하면 되지?"라고 하더니. 양념된 치킨 조각 몇 점, 불면 날아갈 듯한 밥알 몇 숟가락, 소금과 약간의 고추로 양념한 무우 몇 조각, 행운의 과자, 빵 한 개 그리고 음료수. 개구리는 맛있다고 잘만 먹지만 음식은 순수 토종인 개구리 엄마는 결국 밥을 다 먹지 못한다. 나는 음료수 대신 산미겔 한 잔, 사약 같은 커피 한 잔.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던 게임을 밥 먹자마자 한다. 준비된 가방은 모두 다섯 개. 마지막 직전까지도 못 건졌다. 개구리가 자꾸 아빠만 쳐다 본다. 그 눈길에 이런 자그마한 일에서조차 능력이 있어야만 하는 아빠로서의 엄청난 중압감을 느낀다. 마지막 아이템은 동전. 사생 결단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크게 휘두르며 광적으로 "here! here!"라고 외쳐댔다. 성공이다. 마지막 가방을 건졌다. 개구리가 너무 좋아한다. ㅋㅎㅎㅎ. 주책스런 부모로 보인들 어때. 개구리는 여행 내내 그 가방을 메고 다녔다. 
승무원에게 카드를 달라고 하니 마분지로 된 카드를 준다. 개구리랑 원카드를 30분 가량 했더니 저녁 먹은 게 다시 역류하려 한다. 뱅기 멀미는 한 적 없는데. 이 카드 때문에 매일 저녁마다 개구리랑 원카드를 해야만 했다. 
공항에 내려 일행들과 다시 접선을 했다. 우리는 이미 입국신고서를 작성했으나 꼬뿌니님과 후니유니님은 어케 써야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자랑스럽게 하드 커버된 인쇄자료를 보여주었다. 후니유니님과 같은 패키지로 오신 연세드신 분의 입국신고서도 써드렸다. 개구리 엄마가 흡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외국인용 줄에 서있었더니 여직원 하나가 대기인이 두어 사람 밖에 없는 domestic으로 가라고 한다. 차례가 되어 여권을 보이자 앉아있던 남자직원 피곤한 표정을 하고 '여기가 외국인용이냐?'고 묻는다. 다른 직원이 이리로 가라고 해서 왔다고 그랬더니 여전히 피곤한 얼굴로 원래 있던 줄로 가랜다. 
개구리 엄마는 내가 필리피노처럼 생겨 그렇다고 내 탓을 한다. 전혀 아닌데. 덕분에 나오는데 20분 이상 손해 보았다. 
짐을 찾고 나오다 맥가이버 칼이 생각나 찾으려 하였으나 보이질 않았다. 어디서 찾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직원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잘 모른다며 조금 기다려 보라고 하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15분 가량 기다리자 그 직원이 다시 나타난다. 손에 노란 봉투를 들고 있다. 고맙다고 하고는 꼬뿌니님과 후니유니님이 나간 곳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찾았지만 넷투어에서 나오기로 한 직원이 보이질 않는다. 후니유니님의 가이드가 가져온 차량에 같이 타고 가잔다. 하지만 우리 숙소는 마카티이기 때문에 대신 혹시나 해서 적어온 넷투어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넷투어 직원이 뉴월드 로비에 있단다. 후니유니님의 가이드가 택시를 잡아주는 친절까지도 베풀어 주었다. 개적으로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표시한다. 택시에 짐을 들어준 가무잡잡 마른 남자가 기념품을 하나 달랜다. 한국돈이라도 괜찮단다. 500원을 줄까하다 팁이라 생각하고 1,000원 짜리 한 장을 주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팁치고는 엄청나게 준 셈이다. 40페소나 되니 말이다. 
택시가 길거리를 달렸지만 아직까지는 외국이라는 느낌이 들질 않는다. 뉴월드에 도착하니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불만을 완곡하게 표시하였더니 현지 랜드사에는 책임이 없고 어쩌구 한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로 따졌더니 별 말을 못한다. 방은 그다지 큰 것은 아니다. 엑스트라 베드를 놓고 나니 꽉 찬다. 배가 무지 고팠지만 새벽 두 시에 먹고 자는 것도 그렇고.
개구리는 금새 잠이 들었지만 개구리 엄마와 나는 배가 고파 잠이 쉽게 오질 않는다. 두시 반쯤 개구리 엄마는 잠이 들었지만 뱅기 안에서 사약 같은 커피를 마신 나는 다섯 시 경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마닐라, 보라카이, 레드코코넛] 


마닐라 아침 - 호텔 
시계를 7:30'에 맞춰 놓았기 때문에 잠잔 시간은 대략 2시간 남짓이 되나 보다. 머리가 머-엉. 개구리, 개구리 엄마를 깨워 식사를 하러 갔다. 부페식이다. 나와 개구리 엄마는 부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은 것도 별로 없이 배만 부르기 때문이다. 아니, 배가 부르다기 보다는 더 먹고 싶은 생각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랄까. 차라리, 촌국수를 한 그릇 먹는 편이 뭔가 식사를 했다는 느낌이 나고 흐뭇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순수 국산이다. 
식사에 대해서는 포기를 한 상태이므로 빵 한 조각, 베이컨(이것도 별로다. 삼겹살 구어 먹다 아무도 손대지 않아 바싹 마른 고기와 무슨 차이가 있담. 그 좋은 삼겹살로 베이컨이나 만들어 먹다니. 무식한 놈들. 이건 돼지 고기에 대한 모독이다.) 두어 점, 스크램블드 에그, 그리고 쌀밥 몇 숟가락(뱅기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 그래도 입안에 넣기 힘든 상태다.), 맹고 주스 한잔.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려 했더니. 이런, 멜론에서 약간 상한 냄새가 난다. 
사실 내가 음식 냄새에는 민감한 편이다. 집에서도 음식이 상했을 거란 생각이 들면 개구리 엄마가 아뭇소리 않고 내 입에 우선 한 숟가락 퍼 넣고 나서 맛있는 지 묻는다. '맛있다.' 그러면 '아직 괜찮은가 보네.'라고 하고는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럴 때면 마루타가 되는 기분이다. 
커피를 달랬더니 또 사약같은 커피를 가져다 준다. 가져다 준 사람 성의를 봐서 한모금 반을 마셨다. 개구리는 잘만 먹는다. 반숙된 계란 노른자 깨서 베이컨 조각과 함께 밥과 비비고 마구 퍼 넣는다. 완전 체질이다.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날이므로 반바지와 슬리퍼로 복장 체제를 바꾼 후 체크아웃을 하러 갔다. 뭐라 그러더니 현금으로 지불할 건지 카드로 할 건지 물어 본다. 뭐시라? 지불할 게 뭐가 있다고? 어디 보자. 이런! 개구리 식사비를 내 놓으란다. 다행히 넷투어의 현지 전화 번호를 적어 왔기에 즉시 전화를 했다. 20분 쯤 지나자 다시 카운터로 전화가 걸려 온다. 캐셔가 그냥 가란다. 나쁜 눔들. 

공항으로 
메터 택시를 타려 물어 보니 조금 걸어 가야 한단다. 비행기 시간이 별로 여유도 없고 안전을 기한다는 생각에 호텔 택시를 탔다. 공항까지 350페소. 가는 동안 길 옆 커다란 나무에 짙은 주홍빛 꽃들이 피어 있다. 길은 엉망이다. 어디 촌 동네 뒷 길을 가는 것 같다. 12시 30분 아시안 스피릿이라 마음이 조금 급하다. 10시 30분까지는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시각이 10시 15분. 길이 콱 막힌다.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니 택시 기사 염려 말랜다. 거짓말같은 솜씨로 밀어 붙이기식 곡예 운전을 하더니 도착. 시각은 10시 25분. 
체크인 카운터로 가니 시간을 아크릴 판으로 표시하는 모양인데 아크릴 판을 꽂는 곳이 깨져 있어 직원이 숫자판 뒤에 유리 테이프를 엉성하게 발라 붙이려 시도를 하고 있다. 두어 번 떨어지니 그냥 포기한다. 뱅기표 받고 $200 환전하고 별 구경할 게 없어 대기실로 들어가니 후니유니님과 꼬뿌니님 일행이 반겨 준다. 같은 뱅긴가 싶었으나 우리만 남겨두고 30분 일찍 출발해 버린다. 의리없는 사람들. 흥. 
지루한 시간을 때우려 개구리랑 개구리 엄마랑 제로 게임(엄지 손가락 가운데 모으고 돌아 가며 숫자 불러 맞추면 사정 없이 패는 게임. 아시죠?)을 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다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쳐다들 본다. 그렇다면 또 쇼맨싶을 발휘해야지. "자, 이제부터는 스페인어로 하는 거야. 우노, 도스, 뜨레스...... 알겠지?" 더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들 본다. 개구리 엄마 차례다. 힘차게 "도스!". 개구리만 엄지 손가락 두 개 다 들었다. 하지만, 개구리 엄마 그냥 넘어간다. ㅋㅋㅋ. 

아시안 스피릿 
셔틀 버스가 왔다. 멀리 가야 하나 보다 싶었더니 20미터 정도 떨어진 뱅기 옆에 내려 놓는다. 장난치는 건감? 아시안 스피릿의 기내는 우리 나라 시외 버스와 별반 다를 게 없다. 40인승. 좌석도 너덜너덜.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말로만 들었던 야채칸 에어콘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옆에 앉은 개구리가 쳐다보더니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킬킬댄다. 구름 사이로 들어가자 진동이 장난이 아니다. 바이킹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개구리 엄마 얼굴이 새파랗다. 
 

비행기가 어느 정도 상승하자 승무원이 나와 물수건을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고 나와 하나씩 나누어 준다. 다시 되돌아 가더니 과자를 또 한 묶음(치즈 넣은 죠리퐁 같은 과자, 빵 같은 쿠키 한 개)씩 나누어 준다. 다시 되돌아 가더니 물과 립튼티를 가지고 와서 하나씩 나누어 준다. 개구리 또 잘 먹고 마시고 있다. 개구리 엄마가 먹기를 포기한 죠리퐁도 달래더니 잘 먹고 있다. 내가 갖고 있던 과자를 줬더니 그건 잘 보관해 둬란다. 사촌 동생 줄 거란다. 창 밖으로 구름이 예쁘다. 아래로는 만화 영화에나 나올법한 섬이 홀로 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비행기 고도가 꽤나 낮아졌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지만 "알랑 꼴랑 멜랑". 뭐라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200미터 정도 아래 좌측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해변이 지나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보라카이 화이트비치다. 저기는 아마도 프라이데이즈일거고 저기는 보트스테이션 1이고. 뱅기는 나의 이런 생각을 그냥 지나쳐 더 날아간다. 아닌가? 5분 후 뱅기는 90도 선회 후 지상에 착륙한다. 공항이 아니다. 시골학교 운동장. 

까띠끌란 - 방카 
다들 찍어놓는 아시안스피릿과의 기념 사진 한 장 찍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제법 있었으나 2-3분이 지나자 어디론가 다 떠나고 우리 가족 외에는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레드코코넛에서는 픽업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내가 알아서 들어갈 거라 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알아서 가야 한다. 하지만 이거 어케 해야 하나? 바로 앞에 보이는 안내 센터로 가서 무작정 물어 봤다.(참, 제가 영어 꽤나 하는 걸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지 몰라 밝혀 둡니다만 저 영어 잘 못합니다. 아니 거의 못합니다. How much?, Where can I..., I'd like to... 정도가 다입니다.) 트라이시클 타고 배 타러 가랜다. 첨타보는 거라 가슴이 두근 거렸지만 20페소로 가격을 흥정하고 트라이시클을 탔다. 
500미터 쯤 가니 바다가 보인다. 20페소를 트라이시클 기사에게 주려했더니 갑자기 두어 사람이 포위를 하더니 30페소 주라고 한다. 얼른 주고 선착장으로 갔다. 배표를 끊고(1인당 20페소) 30미터 정도 걸어 사람들이 많이 선 곳으로 갔다. 아마, 저기서 배를 타나 보다. 우리 나라 어촌에서도 느낄 수 있는 약간의 비린내가 바람에 섞여 있다. 
방카라는 놈을 탔다. 우리 말고는 모두 현지인으로 보인다. 파도가 조금 심하다. 건너편에 있는 쉰 쯤 되 보이는 촌동네 아줌마 같은 사람이 개구리를 보고 "네 일롬이 모야?"라고 한다. '먼 말?' 다시 "네 일롬이 모야?" 한다. 아하! 우리말이구만. 하지만 개구리 당황해서 말을 못한다. "멧 쌀?" 할 수 없이 영어로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아줌마 나를 보고 "아뇽하쎄요?" 한다. 내가 질 수 없지. "까무스따까" 아줌마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이번에는 "꼬맙슴미다.". 지체없이 "살라맛!" 되돌려 줬다.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깔깔대고 웃는다. 
아줌마와 몇 마디 영어로 얘기를 나눴다. 한국사람이 많이 온단다. 패키지로 온 거냐고 묻길래 아니라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바다 색깔이 짙푸른 잉크색이다. 방카는 파도에 맞춰 속도를 줄였다 높였다 하며 한 걸음씩 보라카이로 다가가고 있다. 

보라카이 
보트스테이션 3인가 보다. 야자수가 눈앞에 서 있다. 하지만 아직도 별로 실감이 안난다. 모두 내린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냥 앉아 있으니 선장(?)이 "온리 원 드랍"이라고 한다. 허걱! 스테이션 2까지 가야 되는데. 일단 내렸다. 젊은 총각이 잽싸게 우리 짐을 받아 든다. '레드 코코넛' 간다고 하니 따라 오랜다. 5분 정도를 좁은 골목길로 걸었다. '이거, 잘못 온거야. 그냥 제주도나 가는 건데.' 걸으면서 개구리 엄마 얼굴을 보니 나와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표를 내진 않지만 엄청 실망한 눈치다. 
짐꾼(?)이 30페소 달랜다. 기냥 주고 트라이시클을 다시 탔다. 길도 엉망이고 공기도 엉망이다. 매캐한 오토바이 배기 때문에 숨을 못 쉴 정도다. 주변의 나무들에는 희뿌연 먼지가 누룽지처럼 앉아 있다. 트라이시클은 구석 으슥한 곳에다 우리를 내려 주더니 30페소 받고 가버린다. 이런 젠장. 이거 뭔가 잘못된 거야.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20킬로가 넘는 가방을 메고 망연자실에 가까운 개구리 엄마를 재촉해 다시 골목길을 걸어 해변 쪽이라 생각되는 방향으로 나갔다. 덥기도 덥고 짜증도 나고. 5분쯤 가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레드 코코넛'이라고 하니 조금만 더 가란다. 다행히 몇 발 걷지 않아 레드코코넛이라고 쓰여진 간판이 보인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바다쪽일 건데 바다가 보이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다. 아항, 후관이구나. 열 걸음 정도 걸어가자 골목끝의 조각 같은 틈을 비집고 바다가 보인다. 왼쪽에 레드코코넛이라는 조그만 문이 있다. 

레드코코넛 
기대보다는 좀 작은 풀장이 있고 풀장 주변에는 예쁜 꽃들과 빨간 열매들이 포도알처럼 열린 대추야자도 보인다. 카운터로 가서 예약이 되어 있다고 하니 뭐라뭐라 그러더니 209호 키를 준다. 항공권 리컨펌을 하려 하니 국내선은 무료지만 국제선은 100페소란다. 100페소를 주고 항공권을 맡겼다.(나올 때 200페소를 더 줘야만 했다. 1인당 100페소란다.) 얼굴은 그런대로 예쁘장한 아가씨가 많이 무뚝뚝하다. 
방으로 들어가니 개구리 엄마가 좀 놀랜다. 기대보다 방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베란다 밖으로 꽃들이 피어있고(209호 베란다 위치에 옥상 정원?이 있다. 바다는 안 보이지만 레드코코넛에서는 가장 위치가 좋은 방이 아닐까 싶다.) 커다란 더블 베드가 두 개, 충분한 거실 공간도 있다. 대략 20평은 되어 보이는 것 같다. 바닥은 깔끔한 대리석 무늬로 되어 있다. 숙소가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일이나 모레 마닐라로 다시 나가는 것을 심각히 고려해 보아야겠다. 


2시가 넘었다. 거지같은 아침밥(우리에게만)을 먹은 터라 배가 무지 고프다. 밥 먹으러 나가쟀더니 개구리 엄마는 침대에 퍼져 일어날 수도 없단다. 룸서비스에 전화를 넣어 뜨거운 물과 젓가락을 부탁했다. 컵라면 세 개와 햇반 세 개가 마지막 희망이다. 다행히 가져다 줄 거란다. 기다리란다. 
한없이 기다렸다. 행여나 오려나, 이제나 오려나. 방밖에 조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 뛰어 갔었다. 그렇게 우리는 굶어죽어가고 있었다.(표현이 너무 비약이 심했지만 어쨌든 그 때의 우리는 보라카이에 대한 실망감이 배고픔과 피곤함과 함께 겹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울고 싶었다. 그러나, 30초 후 방문이 열리더니 아줌마가 커피포트만한 자기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물과 젓가락을 주며 방금 막 끓인 물이란다. 그렇구나, 물을 끓이느라 늦었구나. 고마워라, 고마워라.(비록 카운터가 매우 무뚝뚝했지만 실제로 레드코코넛의 식당 서비스는 나쁘지 않았다.) 
컵라면과 익지도 않은 햇반(익지않은 햇반은 펄펄 날아다니는 것이 그 동네 밥과 별 다를 게 없었다.)과 준비해 간 김치와 맛김으로 흡족한 점심 식사를 마쳤다.

딸리파파 시장으로 가는 길 
잠시 숨을 돌린 후 딸리파파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나가자마자 가무잡잡한 총각 하나가 달라 붙더니 "호핑, 서(sir)?"라고 한다. 이런 건방진 녀석, 왕족의 후손에게 겨우 귀족에게나 붙이는 '경(sir)'이라니. 몰라서 그런 거니 용서해 준다. 
호핑투어 $50이면 된단다, 크랩과 새우 포함한 점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대로 괜찮은 가격이다. 하지만, 섬처녀님을 만나기 전에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항이다. 일행(꼬뿌니님)을 만나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고 하고는 다시 길을 걸었다. 바람이 시원하긴 했지만, 낡은 비닐로 바람막이를 한 음식점들과 조악한 기념품을 팔고 있는 행상들과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깎은 과일을 파는 아줌마들과 '짜가'일 것이 분명한 시계 파는 남자들. 내가 생각했던 보라카이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발앞에 새파란 야자가 하나 떨어져 있다. 얼른 줏어 차고 있던 맥가이버 칼로 따보니 물이 가득 차있다. 한 모금 마셔보았더니 우리 나라에서 마셔본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아니다. 개구리도 한 모금 마시더니 포기한다. 길 옆에 다시 고이 세워두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딸리파파 시장은 생각보다는 멀었다. 이상하다 싶어 꼬마를 잡고 시장이 어디냐고 물으니 말도 없이 바로 옆의 골목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폭이 2.5미터 남짓한 골목을 따라 우리 나라 60년대 과자를 팔고 있는 구멍 가게들과 바틱과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는 가게들이 보인다. 메인로드로 가는 길에 망고 네 개를 사고 비치로드로 다시 오면서 물과 음료수를 샀다. 창원에서도 5일장을 자주 보고 시골 5일장도 가끔 구경가는 우리에게는 그리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코코넛 맛사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맛사지 아줌마가 우리를 부른다. 옷을 갈아입지 않은 터라 어쩔까 망설이다 더 늦으면 선셋을 놓치겠다는 생각에 드러누웠다. 이런, 나더러 아줌마가 반바지도 벗으란다. 팬티만 입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기야 어때, 여기서 나 아는 사람 만날 일도 없고. 하지만, 꼬뿌니님 일행이 다시 지나간 것으로 안다. 쥐도 알고 새도 알고. 맛사지는 구석구석을 주물러 주는 것이 그런대로 시원했다. 하지만,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닦느라 실제 맛사지하는 시간은 30분 조금 넘을까 말까다. 
맛사지를 받고 나니 개구리가 보이질 않는다. 뒷골이 쭈뼛했다. 맛사지 받는 동안 바닷가에 있겠다고 했는데. 바닷가를 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맛사지 아줌마가 숙소가 어디냐고 물어보더니 그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이 사람들의 이런 류의 말은 믿지않는 게 좋다는 것을 듣고 왔지만 비치로드를 통해 레드코코넛으로 뛰어갔다. 다시 해변을 따라 헐레벌떡 온갖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리며 뛰어 오다보니 개구리가 엄마랑 같이 털래털래 걸어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쁜 녀석. 맛사지 받고 다리 근육 좀 풀었나 싶었더니 더 모이게 만들어.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선셋 

여기에는 쓸 말이 없다. 항상 낮에는 화창하다 선셋 무렵에는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손바닥만한 주황색이라도 본 적이 없다. 유명하다는 찰리스바 구경도 못했다. 

밤하늘
마찬가지이다. 별 두 개만 봤다. 아마 목성과 토성이었을 것이다. 

시 러버스 - 망고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는다. 온 몸에 묻은 코코넛 오일이 잘 ��어지질 않는다. 비누를 잔뜩 칠하고 박박 밀어 씻어냈지만 잠시 있으니 고소하면서 달콤한 코코넛 오일 냄새가 솔솔 난다. 기왕 기름 발랐으니 내일은 알맞게 구워나 볼까? 
옷을 갈아입고 칭찬이 자자한 시러버스(싫어 버스 아니다.)로 갔다. 레드코코넛에서 대략 20미터 정도 거리다. 개구리는 치킨을 좋아하니 치킨 필레미뇽, 개구리 엄마는 레드 페퍼 스테이크, 나는 해물 카레를 시켰다. 평균 140페소 정도. 우리 돈으로 3,500원 정도. 산미겔, 콜라도 함께 시켰더니 음료수 다 마실 때 쯤 음식이 나왔다. 
이런! 주문할 때 '짜지않게'라고 하는 걸 깜빡했다. 스테이크도 짜지만 치킨 필레미뇽은 장난이 아니다. 짠 것을 잘 먹는 개구리도 이건.. 껍질인 치킨만 벗겨 먹고 안쪽의 오징어는 포기한다. 게다가 개구리는 해물은 잘 먹질 않는다. 다행히 내 해물 카레는 입에 짝 달라 붙는다. 짜지도 않다. 덕분에 카레는 개구리랑 개구리 엄마가 잘 먹었다. 양은 조금 모자라는 듯 하다. 
문독스를 가서 스틸 스탠딩 어쩌구를 해보려 했으나 내가 잠이 모자라 포기하고 숙소로 다시 돌아 왔다. 베란다에 있는 등나무 의자에 앉으니 온 몸이 좌아악 풀린다. 9시 조금 넘었지만 풀장에는 사람이 없고 붉고 푸른 조명들만 은은하다. 난간 바로 옆에 있는 야자 나무의 열매 하나에 빨간 전등을 감아 '레드코코넛'을 만들어 놓았다. 바람에 약간 습기가 묻어 있지만 시원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여행이 아니라 휴가라면 그런대로 만족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베란다에서 잠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기가 많다던데 아직 접선을 못했다. 개구리는 잠이 올때까지 만화 채널만 붙잡고 있다. 
나가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혀둔 망고를 하나 깎아 입에 베어 물었다. 음. 이 그윽한. 맛이. 아니다. 향이 비위에 몹시 거슬린다. 개구리도 개구리 엄마도 한 입 먹더니 더 안먹는다. 뒷날 저녁에 깎은 망고는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아니었다. 돌아올 때 쯤 개구리 엄마는 망고에 익숙해져 식당에서는 먹을만하다 그러더니 요즘은 말린 망고 혼자 다 먹는다. 어제 밤에도 한 봉지 거의 혼자 다 먹었다. 
그렇다! 개구리 엄마 없을 때 말린 망고 혼자 먹어 보자. 망고 먹으러 감다. 망고 다 먹으면 다시 오겠슴다. 아마 며칠 걸릴 검다. 

그러고 보니 오늘(30일)이 결혼 10주년임다. 에그, 징그러워라. 

[호핑 투어]

레드코코넛의 아침 식사 
8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를 하러 레드코코넛의 식당으로 향했다. 2인용 식사 쿠폰을 보여주니 종업원이 2인 식사 준비가 된 식탁으로 안내를 한다.
나이프와 포크가 2벌 밖에는 없다. 할 수 있나, 음식을 약간 많이 가져와 개구리랑 나누어 먹어야지. 그런데, 부페(? 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음식 진열한 곳에 "남기지 마시고 나누어 먹지 마시오."라고 적혀있다. 눈치를 봐 가며 음식을 약간 넉넉하게 가져와 개구리, 개구리 엄마랑 함께 식탁에 앉으려니 쿠폰을 받았던 맘씨 좋게 생긴 총각(?)이 살짝 미소를 짓더니 나이프와 포크를 한 벌 더 가져다 준다. 뿐만 아니라, 계란 프라이 부치는 곳에서 프라이를 달라고 하니 이 친구가 직접 세 개를 부쳐서 테이블까지 가져다 준다. 계속 옆에서 신경쓰이지 않게 지켜보는가 싶더니 개구리가 계란을 입 주위에 묻히자 말없이 냅킨도 가져다 준다. 사흘 동안 몇 마디 말밖에 못 나누었지만(이 동네 사람들은 항상 패키지인지 아닌지를 꼭 물어본다.) 참 마음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카운터와는 너무 다르다. 식사의 질은 최악이었지만(그래도 개구리는 너무나 잘 먹었다.) 수영장이 있는 정원을 보며 식사 하는 분위기도 좋았고 식당 종업원들 모두가 친절했다. 

호핑 투어 - 스노클링 

어제 저녁 7시에 아쿠아리우스에서 꼬뿌니님 일행과 함께 섬처녀님을 만나 호늘의 호핑투어에 대해서는 미리 얘기를 해 둔 상태다. 아는 게 있나, 섬처녀님 얘기 들으며 그냥 "네, 네" 하는 것으로 준비 끝. 랩스터 두 마리, 망고 크랩 네 마리, 새우 열마리, 닭 두마리, 과일들, 고구마, 바베큐용 숯, 맥주 넷, 음료수 넷, 미네랄 워터 넷, 낚시용 미끼, 스노클링 장비 다섯 벌. 
호핑투어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모집 호핑과 개별 호핑. 모집 호핑은 싼 반면 음식에 해물이 포함되지 않으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므로 다소 불편한 점이 있지만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다고 한다. 개별 호핑은 인원이 5명 정도만 된다면 개별 호핑과 거의 비슷한 가격에 즐길 수 있으며 음식에 크랩과 새우 등의 해물이 포함이 되고 배가 욕할 때까지 먹을 수 있으며 거의 마음먹은 대로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10시에 아쿠아리우스에 모였더니 현지인 총각 하나와 꼬마 하나가 짐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짐을 든 총각이 앞장을 서고 꼬뿌니님 일행, 우리 가족, 꼬마의 순으로 골목을 걸어 메인로드로 향했다. 꼬마가 커다란 음식물 봉지를 양 손에 들고 힘겹게 뒤따라 오는 것을 본 개구리 엄마가 나를 부른다. 얼른 달려가 봉지 하나를 달랬더니 미안해 하는 눈치이면서도 하나를 준다. 
이름은 '또또', 열 세 살, 초등학교 6학년이란다. 아마 방학이라 일하고 있나 보다. 망고 나무가 어떤 건지 물어보니 길 옆의 집 안에 있는 큼직한 나무를 가리킨다. 잘 살펴보니 하나도 망고나무 같게 생기지 않은 나무가 파란 망고를 달고 있다. 이 동네 망고 나무란 게 우리 나라 시골에 있는 감나무와 비슷한 성격인가 보다. 집집마다 한 두 그루씩은 있고 동네 꼬마들은 주인 눈치 봐가며 서리도 하는... 
15분 여를 '또또'랑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며 걸어가고 있자니 눈 앞에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다. 지도에는 '불라복'으로 표시되어 있는 화이트비치 반대편 해변이다. 화이트비치에는 바람이 세어 파도가 일었으나 이곳은 정말 호수 같다. 물도 너무나 맑고 잔 파도조차 일지를 않는다. 
방카를 타고 20분 가량 달리며 주변의 경치와 바다를 구경하고 있자니 옆에서는 개구리 엄마가 개구리 온 몸에 선크림을 떡칠하고 있다. 스노클링을 할 장소에 다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일행이 모두 머뭇거리는 눈치다. 얼른 스노클과 구명조끼를 착용한 후(수영 조금만 할 줄 아셔도 구명조끼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선배여행자들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 윗도리는 그대로 입고(안그러면 등이 타서 견디기 힘들단다.) 바닷물에 몸을 담궜다.
머리를 물 속에 담그는 순간...... ^*^%0$#*@*&^%* @*&^%*&*^%0$#* ^0$#*@*&^%*0$% ...... ...... ...... 정말 이랬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직접 해 보셔들. 
개구리는 그렇게 설득을 해도 머리만 잠시 1초 가량 담그더니 절대 물에 안들어 가겠단다. 눈도 작은 놈이 겁은 많아서리 결국 개구리가 스노클링을 하지 않은 건 우리 여행 중 가장 아쉬운 일이 되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개구리 엄마는 배 옆에 붙은 막대기를 잡고 거기서만 바닥을 보고 있더니 나더러 좀 잡아 달랜다. 처음 5분 가량은 내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다니더니 나중에는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다. 

호핑투어 - 바베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물밑을 보며 돌아다니고 있자니 2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가버린 모양이다. 다시 20분 가량 방카를 타고 크리스탈 섬으로 향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식탁이 마련되어 있고 옆자리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마쳤는지 기타를 치며 필리핀 노래를 부르고 있고 스모 선수 같이 생긴 허연 놈 하나만 닭다리를 뜯고 있다. 총각(빅)과 또또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개구리 엄마, 꼬뿌니님과 같이 온 분과 함께 섬 구경을 하기로 했다. 꼬뿌니님과 개구리는 움직이기 싫은지 그냥 앉아 있겠단다. 하기야, 개구리는 우리가 스노클링하는 동안 혼자 배 안에만 앉아 있었으니 재미도 없고 속도 불편할 거고, 그래도 처녀 총각만 남겨 두고 가는 게 아닌데..
20미터 정도 길을 따라 가니 몇 가지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능선에 서 있다. 능선에 위치한 조형물들이므로 사진 찍기에는 그만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 카메라로 찍더라도 사진을 찍으면 뒤로 위치할 바다와 섬들이 희미하게 보이고 인물은 뚜렷하게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돌아와서 사진을 찾아보니 수동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신혼부부인양 온갖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다가 돌아와 보니 옆 자리에 있던 스모선수 같이 생긴 사람이 "코리안?"하고 묻는다. 간단하게 물으면 간단하게 답해야지. "예스." 자기를 가리키며 "재패니즈."하더니 악수를 청하면서 "월드컵, 코리아, 재팬. 베리 굳." 한다. 짜아식, 생긴 것도 그렇더니 영어는 나보다도 못하나 보다. 
옆자리의 사람들이 노래를 그치길래 기타를 빌려 함께 노래를 불렀다. 기타를 안 친지 10년이 넘었으니 제대로 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래도, 시원한 그늘 아래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으려니 정말 휴가 기분이 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양놈들 휴가란 게 진짜 휴가란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일년에 겨우 대엿새 가장 복잡할 때 한꺼번에 휴가란 걸 받아 한꺼번에 바닷가로 몰려 한거번에 바가지에 더위에 교통 체증에 시달리다 다시 한꺼번에 돌아오는 게 휴가이니 말이다. 
빅과 또또가 음식을 날라 온다. 꼬치 종류는 따로 장식을 하지 않아도 먹음직스럽고 과일들도 머슴애들답지 않게 멋을 내어 놓았다. 먹기에 아까울 정도다. 하지만, 스노클링 하느라 지친 배들이 요동을 치고 있다. 다들 눈치보느라 랩스터보다는 만만하게 생긴 망고 크랩에 손이 간다. 사실 랩스터보다는 망고 크랩이 더 맛있다는 중론이었다. 꼬치에 꿰어놓은 새우는 거의 20센티미터 가량에 굵기는 엄지 손가락만하다. 새우 한 마리 먹었더니 배가 벌떡 일어나는 기분이다. 
인간이 배고픔을 느끼는 건 위가 비어서가 아니라 피 속의 포도당이 일정치 이하로 내려가면 배고픔을 느끼게 되어 있다. 따라서, 배가 고플 때에는 가장 빨리 포도당으로 변할 수 있는 탄수화물(특히 당분)을 섭취하면 배고픔이 쉬 사라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단백질은 열량도 탄수화물의 반밖에 되지 않거니와 포도당으로 변하는 데에는 만만치않은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것처럼 느껴지게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음식들에 자꾸 손이 간다. 위는 아마 포화상태이겠지만 아직 포도당으로 변화되지 않은 탓인지 자꾸 손이 가고 있다. 고구마의 맛도 다른 분들의 말마따나 '환상적'이다. 랩스터 반마리, 크랩 한 마리, 새우 세 마리, 치킨 두 조각, 맥주 두 캔, 고구마 반 개, 공기밥 한 그릇, 파인애플 4분의 1조각. 결국 소화제를 먹고서도 나는 그날 저녁과 뒷날 아침을 아예 먹지를 못했다. 소화제를 먹은 건 머리털나고 두번 째다. 

호핑투어 - 크리스탈 케이브 
식사를 마치니 예약된 네 시간이 이미 지나가 버렸다. '빅'에게 얘기를 해 배를 두 시간 더 빌리고 낚시도 하겠다고 하니 낚시는 안된단다. 미끼를 준비하지 않았단다. 이게 뭔 소리. 아침에 받은 준비물 계산서를 보니 '미끼'는 없다. 그냥 낚시를 포기할까 일행에게 물어보니 '죽어도' 낚시는 해야겠단다. '빅'에게 미끼를 사오라고 보내놓고서는 식사 전에 산책을 갔던 곳에서 보아 둔 동굴로 갔다. 능선 바닥에 직경이 80cm 정도 된 구멍이 바닥을 향해 뚫려있고 그 구멍 안의 계단을 내려가니 시원한 공기와 함께 마치 풀장 같은 곳이 나온다. 물의 깊이는 1m 40정도. 이번에는 구명 조끼없이 스노클만 착용하고 헤엄쳐 다녔다. 처음에는 발이 닿는 곳만 헤엄치며 잠수도 했었지만 조금 자신이 생겨 내 키가 넘는 곳으로 헤엄쳐 다니며 바닷속을 감상했다. 그렇게 까불다. 죽을 뻔 했다. 갑자기 숨대롱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왔고 물 빼기에 실패한 후. 허둥지둥.에이 몰라. 어쨌든 아직 살아 있다. 
개구리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구명 조끼 입고 혼자 잘 다니고 있다. 발이 닿는 곳으로 다시 가 조금만 까불고 있었더니 '빅'이 돌아와 낚시하러 가잰다. 

호핑투어 - 낚시 
'빅'이 배를 다시 10분 가량 몰더니 한 곳에 세운다. 낚시는 오전에 잘 된단다. 지금은 생선들이 배가 불러 낚시가 잘 안된단다. '미끼'(미끼가 영어로 뭔지는 나는 모른다. 하지만 '빅'은 미끼가 우리말로 뭔지 알고 있었다.)는 새우. 그런데, 새우가 식사 때 먹던 것 보다는 작지만 우리 엄마 보시면 "이런 망할 눔들, 젯상에 올리는 새우보다 큰 걸로 생선 밥을 줘. 아이구 베락 맞아 죽을 눔들!" 하실만큼 크다. 
낚시 장비는 초현대식인데 약간 파손된 최신식 음료수 빈 플라스틱 병에 칭칭 감아놓은 낚시줄과 그 끝에 달린 봉돌과 낚시 바늘 두 개가 전부다. '우리'는 물고기가 날 잡아잡슈하고 기다리기만 하는데 배 앞전에서 낚고 있는 '또또'가 한 마리 건져 낸다. 알록달록한 그 색깔에 여자들이 감탄을 한다. 내 낚시 도구는 개구리에게 뺏긴 지 오래다. 잠시 후에는 '빅'이 같은 놈을 한 마리 건져 낸다. 잠시 뒤에 다시 '또또'가 까무잡잡한 놈 한 마리를 건져 낸다. 


우리 '선수'들은 기가 죽어 있다. 그렇게 '또또'와 '빅'이 건져내는 걸 감상만 하고 있더니 드디어 개구리가 우리 '선수'로서는 최초로 한 마리 건져낸다. 연이어 꼬뿌니님과 친구분도 한 마리씩 건져내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걸로 끝. 개구리 엄마는 열심히 고기밥 줬다. 아마 녀석들 배불리 먹었을 게다. 생선들이 개구리 엄마가 멕인 새우 조각 때문에 배가 부른지 이제는 어신도 없다. 
꼬뿌니님 친구분 눈을 빛내며 "이제 회 먹어야죠." 한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부터 초장을 준비해 갔었으나 그 때는 점심 먹은 것이 슬슬 효과를 발휘하던 때라 물 말고는 삼키기 힘든 상태다. '빅'에게 '스시' 어쩌구 하면서 물어 보니 몇 마리 가져가겠느냐고 물어 본다. "이거, 이거, 이거" 세마리를 골랐지만 회를 뜰 생각을 하질 않는다. 5분 쯤 지나 "사시미?"하고 물어 보니 그제서야 칼이 없어 안된다고 한다. 주머니를 뒤져 맥가이버 칼을 꺼내 보이며 이거라도 되냐고 했더니 배를 세우고는 금새 회를 떠 준다. 껍질도 벗기지 않고 바닷물이 흥건히 묻어 '회'라고는 얘기하기 힘들다. 
다시, 아무도 선뜻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 배가 말도 못하게 불렀지만 한 점을 초장에 찍어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살이 달짝지근하다. 개구리 엄마가 한 점 맛을 봤고 나머지는 나와 꼬뿌니님과 친구분이 함께 처리를 했다. 
누군가 장난을 치고 싶은지 '또또'에게 권해 보란다. '또또'가 손을 훼훼 젓는다. 추가된 뱃삯에 팁을 50페소 더 줬더니 '빅'이 매우 고마워하는 눈치다. 꼬뿌니님 일행은 맛사지 받으러 간댄다. 

보라카이의 밤 - 1 
레드코코넛으로 다시 돌아온 시각이 대략 여섯 시 쯤. 개구리랑 개구리 엄마는 속에 걸신(乞神)이 들었는지 낮에 그렇게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댄다. 개구리는 이 동네 음식이 맘에 드는지 꼭 밖에 나가서 먹어야겠단다. 미치겠구만. 
화장실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에 햇반 두 개를 데우고 맛김과 냉장고에 넣어 둔 김치를 꺼냈다. 이게 웬걸. 발갛게 익은 김치를 보니 낮에 분명히 배가 욕할만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혀에 단침이 고인다.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남원으로 다시 돌아와 거렁뱅이 차림을 하고 월매를 찾아가자 월매가 속이 상해 이도령에게 찬밥 한 덩이와 김치 조각을 주자 이도령, "밥아 너 본지 오래다!" 하고는 게눈 감추듯 먹는 장면이 있다. 
참말로, "김치야, 너 본지 오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밖에 가서 사먹어야겠다던 개구리도 고소한 맛김에 김 폴폴 나는 밥 한 젓가락과 발간 김치를 한 조각 얹어 주니 군소리 없이 삼킨다. 게눈 감추듯 밥을 먹고 나니 그냥 자기는 아무래도 아쉽다. 니켈로디온(만화 채널) 보겠다는 개구리를 꼬셔서 '문독스'를 찾아 가기로 했다. '스틸 스탠딩 어쩌구'를 시도해 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카운터에 물어 보니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랜다. 얼마나 가야 되느냐고 물어보니 모르겠단다. 뭐, 힘들거야 있나. 여기서 밤중에 남는 거라고는 시간 뿐인데. 
길옆의 가게들도 구경하고 개구리 엄마 사롱도 하나 사고 하면서 쉬엄쉬엄 문독스를 찾아 북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문독스가 보이질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비치로드의 끝인지 길을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다. 젠장, 된장, 고추장. 다시 돌아가야지, 별수 있나. 그런데, 개구리가 배가 고프덴다. 자꾸 어디든 들어 가서 뭐든 먹잔다. '그래,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함함타 그러는데...'라고 생각해보려 하지만, 지 에미 애비는 입에 맞지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이 많은데 이눔은 뭘 그리 잘 먹나 싶은 게 개구리 엄마 표정도 좀 황당하면서 억울하기도 한가 싶다. 
식당과 바가 함께 있는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개구리 혼자 치킨 카레(개구리 혼자서 필리핀에서 닭 열 마리는 먹었지 싶다.)를 시켰더니 쥔장(?)이 조금 서운해 하는 눈치다. 얼른 펼치고 있던 메뉴판에서 칵테일을 두 개 손가락으로 짚어 추가 주문을 하니 그제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간다. 
잠시 앉아 있으려니 하늘에서 잠시 섬광이 번쩍인다. 가게 종업원인양 싶은 사람 둘이서 잽싸게 비닐로 된 바람막이들을 설치하기 바쁘다. 바람막이 설치를 다 마치자 신기하게도 모래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한다. 옆을 보니 개구리가 귀를 꼭 막고 있다. 이눔은 천둥 번개를 엄청 무서워 한다. 진짜 겁이 많다. 애 키우는 데에는 겁 많은 게 좋은 것 같다. 위험한 일은 하질 않으니까. 
개구리 식사와 함께 뻘건 잔 두 개, 초록색 잔 두 개, 도합 칵테일이 넉 잔이 나온다. 뭔 일? 쥔장 "해피 아워."라며 주방으로 사라진다. 칵테일 양도 만만치가 않다. 개구리는 귀를 막고 있으려니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무서워, 무서워. 빨리 레드코코넛 가요."라고 하지만 밥을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니 군소리없이 먹는다. 참 잘 먹는다. 어이가 없다. 
개구리 때문에 조금 빨리 식사를 마치고 다시 레드코코넛으로 돌아 오려니 바람이 시원스레 분다. 음식 가게들은 구멍난 비닐 바람막이로 가게 입구를 가리고 있다. 바닷가에서 이 정도 바람이야.

보라카이의 밤 - 2 
레드코코넛으로 돌아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려니 개구리는 소파에 앉아 만화를 보겠단다. '그래라, 기왕 학교 땡땡이 치고 온 거 니 맘대로 해라. 세상을 다아 가져라!'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 새 개구리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개루리를 들어 침대에 옮겨 놓으려니 개구리 엄마가 나가잰다. '그래라, 니 맘대로 하세요. 니도 세상을 다아 가지세요.'다. 
사롱을 입지않으려 일부러 빼는 개구리 엄마를 설득(?)해서 사롱을 입히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개구리 없이 둘이서 남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혹이 하나 없어지니 훨씬 자유롭다. 비오는 날 둘이서 시내에서 술 한 잔 마시고 돌아 오다 장난 삼아 우산으로 가리고 뽀뽀라도 할라치면 개구리 엄청 부끄러워 하면서 우리에게 투정을 부린다. 그런 놈 없지, 나 아는 놈 없지. 그래 맞다. 세상이 다 내끼다. 개구리 엄마 옆구리를 잡고(어깨를 잡기에는 개구리 엄마 키가 좀 크다. 나와 3cm 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다. 결혼 할 때에도 개구리 엄마는 맨발로 내 옆에 섰었다.) 함께 보라카이의 밤길을 걸으려니 어제 오후에 보라카이 들어올 때의 절망에 가까웠던 생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봄봄바 가까이 가니 경쾌한 댄스 음악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둘이서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걷자니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것 같아도 조금 지나자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쳐다 본다.(아마, '저것들 돌았나 봐.'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 개구리 엄마가 옆에서 "그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한다. ^^ 이것이 또 글을 훔쳐 읽더니 키가 2cm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마구 우긴다. 아니다, 절대로 3cm 차이 난다. 이건 확실하다. 이번에는 '확실하다'는 단어 가지고 시비를 건다. "재 봤나?") 
산미겔 한 병을 들고 걸으면 더 좋겠지만 배가 부를 대로 불러 더 넣을 공간이 없는 것이 아쉽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도 나오는 건데...... 졌다. 그래 2cm 차이 난다. 됐냐? 흥분 가라앉히고 글이나 계속 쓰자. 
탈리파파 시장까지 걷기에는 아무래도 체력이 모자랄 것 같다. 이 시각에도 맛사지 아줌마 한 사람이 "맛사지?"라고 한다. 개구리 엄마는 맛사지에는 별 흥미가 없다. 맛사지 받을 때에는 시원한 듯 하지만 받고 나면 그게 그거란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봄봄바 근처로 오니 개구리 엄마가 "들어 갈까?"라고 묻는다. 나도 제법 망설여진다. '들어가서 한 번 흔들어 봐?' 하지만 안을 살짝 보니 아무리 살펴 봐도 우리 또래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보이질 않는다. "그냥 밖에서 흔들어도 기분 좋은 걸." 옆엣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개구리 엄마랑 둘이서 열심히 흔들며 봄봄바 앞을 지나 왔다. 신난다. 
가시는 분들 꼭 밤 중에 비치로드를 거닐면서 간간이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흔들며 걸어 보시길 아주 강력히 권한다. 정말 재밌다. 신난다. 까짓 '미친 놈' 취급 받으면 어때. 
사실 걔들 우리를 아주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에는 나야 아니지만 키 170에 가까운 개구리 엄마의 좌악 빠진 몸매가 한 몫을 했다. 많이 흔들며 걷는 나보다는 부드럽게 흔들며 걷는 개구리 엄마에게 시선이 모아지는 느낌이었다. 난 팔풀출이다. 

[데이빠뀌지, 체험다이빙] 

프라이데이즈의 데이빠뀌지 
사흘째 아침이다. 가볍게(? 난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어제 낮에 먹었던 호핑투어에서의 바베큐 요리들이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개구리 엄마와 약간의 의논을 해야만 했다. 개구리 엄마는 처음부터 망설이더니 결국 스쿠버 다이빙은 하지 않겠단다. 때문에 오전 중에 개구리랑 둘이서 프라이데이즈로 가서 데이빠뀌지를 이용하다 내가 스쿠버를 마치고 데리러 가는 것으로 했다. 사실 나도 사진에서 보던 그 환상적인 모습의 프라이데이즈에서 놀고 싶기는 했지만 두 가지 다 할 수는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해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개구리 엄마가 메인로드는 가기 싫다 그러길래 레드코코넛 앞에 있는 방카로 가서 프라이데이즈까지 가 줄 수 있느냐 물으니 400페소 내란다. 에그머니. 할 수 없이 레드코코넛 옆의 골목길을 다시 걸어 메인로드로 가 트라이시클을 탔다. 이번에는 제법 멀리 이동하는가 보다. 골목길이라 불러도 시원찮을 메인로드를 따라 한참(그래도 10분 안쪽임) 가더니 또 아무 것도 뵈지 않는 으슥한(?) 곳에 트라이시클을 세우더니 다왔다고 내리란다. 이 상황은 첫날 레드코코넛 들어가면서 겪어 봤던 터라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고 30페소를 주고 내렸다. 멀리 가든 그렇지 않든 외지인은 두당 무조건 10페소다. 그렇지만 눈치가 약간 서운한듯 하다. '조거, 옛날 같으믄 바로 봉인디.'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바다쪽이라 생각되는 방향으로 소롯길을 따라 숲을 헤치고(?) 걸어 가니 생각 외로 금방 바다가 보인다. 이쪽에는 야자수가 꽤나 많이 보인다. 모래 사장까지 걸어가니 오른쪽으로 건물들이 보인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던 환상적인 모습의 코티지는 아니다. 대충 눈치로 이곳은 아닌가보다 하고 지나쳐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사진으로 보던 그 환상적인 모습의 이거. 아닌데. 에이, 아무려면 어때, 원래 사진이란 게 그렇지 뭐. 화이트비치의 사진에 잘 등장하는 길게 누운 야자수도 옆에서 보면 우리 나라 뒷산의 소나무보다 못한데 뭘. 
입구에 보니 위병 초소 같이 생긴 곳에 아줌마 한 사람이 있어 거기로 가서 그네들식의 유창한(^^;;) 발음으로 '데이 빠뀌지'라고 하니 어랍쇼, 알아듣지를 못한다. "뭐라고라고라고?" 그러면 한 번 더. 이번에는 좀 더 딱딱한 발음으로 "데 이 빠 끼 지"라고 하니 그런 거 없덴다. 허걱. 하지만, 굳세게 그런 거 있다는 거 듣고 왔으니 점심 식사랑 수영장 사용료, 타월 사용료, 해변 사용료 합쳐 얼마냐고 다시 물으니 그제서야, "아, 이 양반아, 점심만 여기서 먹으면 그 딴 거 다 꽁짜여. 니 맘대로 해 부려." 라며 식당을 가리킨다. 어떤 인간이 '데이 패키지' 소릴 한 겨. =_=;; 
그럼 좀 돌아보겠다고 했더니 레드코코넛 카운터의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매우 사무적인 '리나'와는 달리 매우 친절한 웃음과 더불어 상냥한 목소리로 그러랜다. 그러면 그래 줘야지. 
뒤로 돌아가니 수영장이 나온다. 그런데 뭔가 아니다. 레드코코넛과는 달리 어린이와 성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얕은 곳과 깊은 곳이 따로 있긴 하지만 왠지 조금. 잠시 살펴 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수영장 바닥이 짙은 푸른색인데다 그늘도 져 있고 물도 약간 흐리다. 풀장 가에는 타월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 쓴 타올을 두는 곳을 보니 두어 장 만이 있다. 물론,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기야, 바닷가에 와서 이 시각에 바다로 안 가고 풀장에서 노는 넘이 이상한 넘이긴 하지. 안쪽은 들어가 보질 않아 모르겠지만 숙소는 모두 분리된 것이 괜찮아 보인다. 당연히 괜찮겠지, 뭐. 물론, 처음에는 이곳도 생각했었지만 잘 싸돌아 다니는 우리 스타일에는 보라카이의 번화가(?)와는 너무 먼 듯하여 관심 밖이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해변도 다른 건 없는 듯하다. 당연히 다를 거야 없지, 여기만 따로 다른 나라의 해변은 아닐테니까.
휴양을 와서 완벽한 서비스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서비스는 아주 훌륭하다고들 하니까.) 여행을 다니며 즐기는 스타일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별로인듯 하다. 계획과는 달리 프라이데이즈의 해변에서 10분 가량 왔다리갔다리 하다 그 옆 야자 그늘에서 사진만 약간 찍고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길을 걸어 나와 트라이시클을 타고 레드코코넛으로 오니 그럭저럭 이미 12시다. 
뭘 먹을까 고민을 하다 바로 옆에 일본식 우동집이 있어 약간의 숙고를 한 후 들어갔다. 완존히 다 베��다. 보라카이 최악의 식사였다. 레드코코넛의 아침은 여기에 비하면 초특급 식사다. 일식집에 대한 내용은 '리뷰'에 보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더 쓰기가 싫다 

체험다이빙 
개구리랑 개구리 엄마는 내가 체험다이빙을 하는 동안 스노클링을 하겠다고 해서 모두 수영복을 안에 입고 아쿠아리우스로 향했다. 원래 2시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1시 40분쯤 갔었다가 다시 돌아와 준비하느라 2시 20분쯤 도착했다. 모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들이야 안했지만 그 눈총들. 눈총도 총이니 총상을 입지 않을 수 없지. 윽! 윽! 따가워! 고만 쏘셔들. 
우선, 섬처녀님으로부터 20분 가량 기본적인 설명을 들었다. 뜨고 싶을 때는 이렇게 하고 가라앉고 싶을 때는 저렇게 하고 물먹었을 때는 이렇게 하고 레귤레이터를 놓쳤을 때는 저렇게 하고. 잠수복과 오리발과 수경을 지급 받고 잠수복을 입으니 오른쪽 발은 겨우겨우 들어가는데 어쩐 일인지 왼쪽 발이 도저히 들어가질 않는다. 한참을 씨름하다 어찌어찌 발목까지 넣으니 섬처녀님 와서 보곤 "아니, 팔에다 발을 넣으니 들어갈리가 있어요?"란다. 글쿠만, 어쩐지 안들어간다 싶더니. 옆에서 개구리, 개구리 엄마, 꼬뿌니님, 꼬뿌니님 친구분까지 모두 킥킥대고 있다. '그래, 미안하다. 난 원피스를 입어보질 못했서 그랬다, 왜. 
아쿠아리우스 앞 바다에 정박해있는 모터 보트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신나게 20분 가량을 달려 어제 갔었던 불라복 근처의 해변인듯 싶은 곳에 내렸다. 가슴 정도의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기초 훈련을 시작했다. 가라앉기, 뜨기, 레귤레이터를 놓쳤을 때에 다시 찾아 무는 법, 수경에서 물 빼기, 수신호 등 약 30분 가량 연습을 했다. 그 동안 개구리는 그제서야 얕은 곳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었다. 어제의 그 화려한 산호초는 보지도 못하고 보이는 거라야 모래 바닥 뿐인 곳을 기어 다니다니.한심한 넘.(이건, 나보고 한 말이다. 미리 스노클링 연습을 시켰더라면 개구리도 멋진 스노클링을 즐겼을 텐데.) 
다시 보트를 타고 5분 가량 바다로 나간 후 약간의 설명을 더 들은 후 섬처녀님의 입수를 시작으로 TV에서 많이 보던 방법(뱃전에 앉아 뒤로 풍덩.)으로 입수를 한 후 다시 섬처녀님의 신호에 맞추어 잠수를 시작했다. 
꿈속처럼 조용한 바닷속.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숨을 들이쉴 때에는 "후우욱"하는 거친 숨소리, 내쉴 때에는 "부그르르륵" 아니, "와그르르륵"하는 물거품 생기는 소리들이 귓전을 강타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바닷속은 정말 고요함 그 자체였다. 귀로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쉬지않고 들려오지만 눈으로 보고 있는 바닷속은 정말로 꿈속같은 풍경과 함께 고요함 그 자체였다. 
약 30분 가량 차츰 깊이를 더해가며 섬처녀님의 인도로 유영을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들은 TV에서 보던 것보다 몇 배나 더한 화려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실제일까?' 스노클링도 환상적이었지만 스쿠버다이빙도 그러했다. 대략 11미터 쯤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계기를 봤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아쉽지만 수면으로 떠올라야만 했다.
아직 산소는 20분 가량이 더 남아있었는데. 엄청나게 돌아다녔나 보다. 보트가 머얼리 떠 있는 것이 깨알처럼 보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보트에 다시 타고 돌아오는데 이런, 엔진이 몇 차례 쿨럭거리더니 급기야 멈추어 버린다. 기사가 잠시 손을 본 후 다시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가 싶더니 100미터도 가지 않아 다시 엔진이 서 버린다. 하지만, 조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하다. 엔진이 조금 돌아가다 또 다시 멈추자 이번에는 섬처녀님이 "모두 오리발 들고 노 저을 준비하세요."라고 한다. 섬처녀님의 농담에 까르르 웃는 사람들의 머리 뒤로 늦은 오후의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꼬뿌니님 일행과 8시 반쯤 만나 션한 맥주를 한 잔 하기로 약속을 하고는 숙소로 돌아가 수영장에서 개구리랑 함께 놀아주었다. 그제서야 불이 붙었는지 스노클링 장비를 사 달랜다. 조금 놀다 스노클링 장비를 사러 탈리파파 시장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맘에 드는 것이 보이질 않는다. 다음에 사기로 개구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녁을 먹으려니 여전히 느끼한 것이 개구리 엄마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개구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먹잔다. 
길 옆을 보니 훈제 바베큐 치킨을 하고 있다. 큰놈이 200페소. 이건 좀 먹을만하게 보인다. 예상대로 매우 맛있었다. 겉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생각과는 달리 육즙이 풍부하게 들어있으며 약간의 아주 옅은 양념을 하고 구어서인지 함께 주문한 밥(이것도 거의 우리 나라 밥과 비슷했다.)과 더불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당연히 숙소로 돌아와서 냉장고에 넣어둔 김치 한조각으로 디저트를 대신해야했지만 말이다. 

[출 보라카이, 마닐라 방황하기] 
엑소더스(다른 말로 출 보라카이기) 
"엄마, 내일 마닐라 가는 거예요?" 
"응." 
"가기 싫은데... 힝..." 
자기 전 개구리랑 개구리 엄마와의 간단한 대화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카운터에서 10시 30분에 방카가 출발하니 그렇게 알고 체크아웃하란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가볍게 먹지 않을 수가 없다. 음식들이 '땡기질' 않으니 말이다.) 짐 정리를 한 후 체크아웃을 하러 가니 쌀쌀맞은 리나는 없고 다른 아가씨가 정산을 하더니 250페소를 더 달란다. 
"보소 아가씨, 먼 돈을 더 달란 말고?"
"국제선 리컨펌 하는 거 안 있어예, 그거 1인분만 주셨잖아예. 그라고, 세이프티 박스 사용료 50페소 하고예." 
"그라모 리컨펌 100페소라는 기 두당이란 말잉교?"
"하모예."
"미치건네. 아, 그라고 세이프티 박스 사용료는 와 또 달라카는교? 그날 줬단 말이라." 
"그라모, 200페소만 더 주이소." 
웃기는 사람들이다. 리컨펌 할 때 100페소 줄 땐 아뭇소리 않더니 나갈 때 딴지를 건다. 하기야 영어 짧은 내가 잘못이지. 하지만 분명히 그 땐 "100페소 per person"이라고는 안했었는데. 에그, 내가 잘 못 들었었겠지. 그래, 200페소 더 먹고 부우자 되세여. 
그래도 나갈 때의 서비스는 만족할 만하다. 짐꾼이 짐을 모두 들어주고 방카까지 태워주고 트라이시클까지 거기다가 공항에서 체크인까지 몽땅. 비행기 출발 시간 되면 자기가 알려 줄테니 근처에서 쉬고 오란다. 대략 45분 가량 남았다. 
맞은편의 영빈관(말은 迎賓館이지만 간판의 글자는 '여엉 빈 관'이다. 먼 말인지는 가서 보면 안다.) 에 앉아 식사를 주문했다. 사발면, 잔치국수, 비빔밥. 모두 5,000원에 가까운 가격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1,500원해도 비싸다고 할 음식들이긴 하지만 느끼한 음식들에 질려있던 개구리 엄마와 나는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보라카이의 우동집에서는 단무지 조각 하나 안주지만 여기는 김치에다 멸치 볶음에다 오이 조림까지 준다.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사장님이 한국사람이란다. 그렇지, 아무래도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섬나라 국민의 쪼잔함과 같을까. 페소가 모자라 달러로 계산하고 거스럼돈을 페소로 받았다. 덕분에 더 이상 환불할 필요가 없었다. 
대기실로 들어갈때까지도 레드코코넛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잘 가라고 하면서 정겨운 미소로 손을 흔들어 준다. 카운터 직원만 덜 사무적이라면 레드코코넛도 꽤 괜찮은 곳인데. 

아시안스피릿 안에서 
나가는 비행기는 좌석이 꽉 찼다. 할 수없이 개구리랑 개구리 엄마랑 한 자리에 앉고 나는 한국사람 비스므리하게 보이는 필리피노와 함께 앉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동안 비디오 카메라로 찍고 있으려니 옆에서 성경을 읽고 있던 필리피노가 한국 사람이냐고 묻더니 자기도 서울에 좀 있어 봤다고 한다. 잠시 성경을 더듬어 읽더니 이번에는 비디오 카메라가 디지털인지 물어 본다. 개구리 태어나면서 산 거니 디지털일 리가 없지. 아니라 그러니까 그냥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한다. 
인사 치레로 성경책 아니냐고 물어 보니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 당연히 가톨릭 신자려니 싶어 물어 보니 아니란다. 개신교 신자란다. 이게 내가 완전 실수(?)한 것이었다. 이 양반 내게 크리스챤이냐고 묻길래, "아니다, 가톨릭 신자이긴 하지만 어머니 따라 절에도 가고 하는 사이비."라고 했더니 자기도 처음에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개종을 했다면서 급기야는 교리에 대해 얘기를 시작한다. 허거거거걱. 비행기 소리는 엄청 시끄럽고 말은 빠르고.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른 체 하고 창밖이나 볼까? 난 기초 생활 영어도 버벅거리는 수준이잖아. 하지만, 자꾸 말을 걸어온다. 예수의 죽음이 어떻고 사후 영혼의 존재가 어떻고 열두 제자가 어떻고. 아아아 나더러 저런 말을 어떻게 알아들으라고.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불쌍한 일반 한국인의 표본을 내가 또 보여야 하다니.
가만 있자, 사후 영혼? 열두 제자? 허거거거걱! 내가 알아듣고 있잖아. 이럴 수가! 신기하게도 이 양반의 말을 거의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겨우 나흘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귀가 트여가고 있었나 보다. 영어 잘 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웃으시겠지만 아시안스피릿에서의 40분 가량의 대화는 내게는 정말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일반 생활 영어도 아닌 종교에 대해 얘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 물론 그래 봐야 생활 영어에서 단어 몇 개 더 추가된 것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30분 가량은 불교까지 끌어들이면서 토론(? 주로 내가 질문하고 그 양반이 설명하는 형태.)을 하고 나머지는 서울에서 포장마차 얘기, 막걸리 얘기라든지를 하다보니 어느새 스피커에서는 5분 후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메시지가 나오고 있었다. 

마닐라의 거리를 방황하다 
필리피노와 가볍게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누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쿠폰 택시 삐끼가 어디 갈 거냐고 묻는다. 이번에는 단호히 "노 땡큐."라고 하고 살펴보니 바로 길 건너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고 택시인 듯 싶은 차들이 계속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택시를 타고나서 "메뜨로 딸랑."이라고 말할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이미 미터는 켜져 있었다. 
"다이아몬드 호텔 플리즈" 요금은 쿠폰 택시의 5분의 일에 불과한 76 페소. 85페소를 주고 내렸다. 팁이 9페소면 10%가 넘는데도 기사 표정이 뚱하다. 
좋긴 좋다. 뉴월드하고는 비할 바가 못된다. 하기야, 필리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호텔이라니까. 하지만, 객실은 그 급이 다르지 않은 이상 큰 차이는 없다. 대충 정리하고 2시 반 정도에 방을 나섰다. 프론트로 가서 에스엠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니 나가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다시 첫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쭈욱 가랜다. 그러면 걸어갈 수도 있냐고 물어보니 걸어갈 수도 있단다. 그럼 멀지 않은 모양이구만. 아마 지리를 아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마닐라 시내를 맘대로 쏘다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지프니도 타 볼 수 있었다. 
시키는 방향으로 걷다보니 차츰 사람들이 많아진다. LRT가 보이는 곳까지 오니 구경 거리도 제법 만만찮다. 야자 열매를 자르고 있는 사람들, 파인애플을 예술적으로 깎아 파는 사람들, 사탕이나 빗을 파는 노점상들, 사설환전소들, 졸리비.. 앗! 졸리비다. 걷느라 다리도 아픈데 쉬어 가야지, 졸리비도 가보고. 
여기서는 "세트 메뉴 몇 번"이라는 식으로 주문을 한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1번일테니 1번과 '할로할로 향이 나는 아이스크림'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시켰다. 물론 할로할로는 아니다. 세트메뉴 1번은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콜라가 한 세트인데 39.5페소이니 1,000원 가량인 셈이다. 맛도 괜찮았다. 패스트푸드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로서도 햄버거는 상당히 맛있게 느껴졌다. 
참, 졸리비 들어가기 전에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사실 첨에는 아가씨들의 짙은 쌍꺼풀과 큰 눈이 엄청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며칠 지나고 보니 여간 느끼한 게 아니다. 우리 나라 아가씨들의 쌍꺼풀 없는 눈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다고 하는 이 동네 총각들의 심정을 알겠다.)에게 에스엠이 어디냐고 물어 보니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그냥 택시를 타란다. 걸어갈 수 있다던데라고 하니 농담하지 말고 기냥 택시 타란다. 
졸리비를 나오면서 혹시나 싶어 이번에는 경비에게 물어 보니 시청이라고 표시된 지프니를 타랜다. 흠. 잠시 긴장. 어케 하나? 좀 더 긴장. 도로를 보니 지프니들이 지 맘대로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고 하고 있다. 시청이라고 표기된 지프니가 제법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 
"개구리 엄마, 개굴아. 빨리 타." 
개구리와 개구리 엄마를 데리고 시청이라고 표시된 지프니를 무작정 탔다. 잠시 두리번두리번. 옛날 시내 버스도 아닌 것이 봉고도 아닌 것이. 먼저 타고 있던 사람들이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런데 차비는 얼마지? 언제 줘야 되지? 한참(약 3초?)을 고민하다 옆에 있는 아줌마에게 물어 보니 "두당 4페소여, 지금 줘여." 얼른(사실은 한 구역 쯤 간 후에 줬음. 아마 기사가 좀 황당했을 지도 모름.) 앞 사람에게 주니 그 앞사람은 다시 앞 사람에게 그 사람은 다시 기사에게 돈을 건네 준다. 듣던 대로다. 아줌마에게 다시 에스엠이 어디냐고 물으니 시청 옆에서 내리면 되는데 가르쳐 주겠단다. 
제 경험으로는 여행사나 가이드의 말과는 달리 마닐라 시내를 활보하는 것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밤이 아니라 낮에 말이죠. 

요즘 너무 바빠서 많은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다음 글은 '에스엠'과 '이하우이하우'입니다.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이...... 얼른 써야 할텐데. 

[SM, 이하우이하우] 

요즘은 여행을 안 가시나들 보죠? 

다이아몬드 호텔에서 시내 나가기 전의 일에 대해 잠깐 한 자 적어야겠다. 호텔 체크인한 후에 짐을 정리하느라 개구리엄마랑 잠시 감시를 소홀히 하는 사이에 개구리가 자그마한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삑삑 삑삑" 
'뭔 소리야, 이거?' 
"아빠, 이거 안 열려요." 
고급 호텔의 세이프티박스는 암호를 리셋할 수 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사용자가 귀중품을 넣은 후 암호를 세팅하고 문을 닫으면 그 암호를 알아야만 열 수 있는데 개구리가 귀중품(개구리한테는 매우 귀중한 것)을 넣고는 암호를 잊어버린 것이다. 
"이런! 인석아, 뭘 넣었니?" 데스크로 연락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짧은 영어가 부담스러워지려는 순간 개구리 엄마가 옆에서 눈짓으로 도와주질 말랜다. 
"그래, 뭘 넣고 잠궜니? " 
"카드요." 
이런 횡재가! 얼씨구나! 무슨 얘기냐면, 필리핀 가는 비행기에서 얻은 트럼프로 개구리가 밤마다 밤마다 원카드 하자는 바람에 머리에 쥐가 나려는 상황이었는데 개구리가 그 트럼프를 세이프티 박스에 넣고 잠궈 버린 것이다. 물론 버튼도 아무렇게나 눌러 기억도 하질 못하고. 
"안된다. 암호 모르면 아빠도 이거 못 연다. 열려면 호텔에서 사람 오라 그래야 되고 돈 많이 줘야 된다. 에이, 나중에 쇼핑 갔다와서 원카드 하려 그랬더니. 그냥 포기하고 얼른 쇼핑이나 가자꾸나." 속에도 없는 말을 하는 나 스스로가 가증스럽다. ㅋㅋㅋ 개구리는 못내 아쉬운 눈치다. 체크아웃하고 방정리 하던 사람이 금고 안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내내 궁금했다, 지금도. 

SM에서
계속해서 SM 쇼핑 얘길 써야할 차례지만 쓸 게 거의 없다. 어쨌든 이어서 써 보자. 시청 앞에서 지프니를 내렸지만 SM을 찾을 수가 없다. 뭐, 또 물어보면 되지. 젊은 아줌마를 붙잡고 또 안되는 영어로 물어 봤다. 
"거시기, SM 갈라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되죠?"
"따갈따갈 따갈따갈" 허걱! 
"그기 아이고예, 나 따갈로그 못해예." 
옆에서 지켜보던 개구리 엄마가 결국 한 마디 더 보탠다."입국할 때부터 필리핀 사람처럼 취급된다 싶더니."(여행기 세 번째에서 언급했었죠?) 
이건 절대로 아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난 눈도 작고 쌍꺼풀도 없고... 절대로 필리피노처럼 생기질 않았다. 하지만, 이튿날 히든벨리와 랜드막 백화점에서 또 다시 필리피노 대접을 받고야 말았다. 
SM몰 입구에는 4명 정도의 사설 경비가 경비를 서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한 줄로 들어가고 나가고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쉴새없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시각이 금요일 4시쯤이니 우리 나라 같으면 한참 일할 시간이다. 하지만,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보니 이해가 잘 가질 않는다. 어쨌거나 여기 온 목적은 그네들이 왜 일을 하지 않고 쇼핑이나 다니는 지 조사하러 온 것이 아니므로 경비에게 기념품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으로 조사를 끝내자. 
2층에 있다는구만. 하지만 가보니 이건 영 아니다. 하나도 사질 못했다. 나머지 생필품들도 질이 영 아니다. 의류의 경우 바느질이 너무 부실한데다 많은 품목이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저급품이다. 쇼핑은 깨끗이 포기. 이하우이하우나 가야지. 듬직하게 보이는 여경비를 붙잡고 물어봤다. 
"이하우이하우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모르는데요."(생글생글 웃으며) 
"그러면 택시를 타려면 어디로 나가야......" 
"모르는데요."(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저 그러면 출구는......"
"모르는데요."(아직까지 생글생글 웃으며) "
-__-;;...... Thank you, anyway."(thank 대신 F로 시작하는 넉 자 짜리 단어를 쓸 뻔 했다.) 기가 막혀! 
어쨌든 둘러보니 문 비스므리한게 보인다. 나가보니 이거 또 아니다. 아마도 짐을 부리는 곳이거나 아니면 . 여하튼 출구는 아닌 것 같다. 문을 지키던 경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본다. 나도 멀뚱멀뚱 쳐다볼 밖에. '이거 또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어보면 또 무시당하지 않을까? 근데, 저 양반 영어는 제대로 되나? 뭘 자꾸 쳐다보는 거야, 나도 미치겠는데..' 경비가 다가오려는 순간 옆에 택시가 서더니 사람이 내리고 곧 출발하려 한다. "잠깐! 이하우이하우 갈 수 있나요?" "어. 여기는. 어. 타는 곳이 아닌데요." 
" ....." 
하지만, 잠시 기다리라더니 경비에게 뭐라 그러고는 우리더러 타랜다. 눈치를 보아하니 '쟤들 불쌍하니 좀 봐주지요.'라고 했을 것 같다. 
"대신 40페소 더 얹어주셔야 됩니다." 뭐, 그래 천 원 더 얹어 주는 거 어렵냐. 제대로만 가 다오. 그런데, 이 기사 지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첨에 택시를 타면서 잠보앙가와 이하우이하우 중 어디가 가족이 식사하기에 좋으냐고 물었더니 별 차이는 없을 거라길래 그러면 오늘은 이하우이하우 가쟀더니 이 양반 한참 차를 몰고 가더니 잠보앙가 앞에 차를 세운다.
"어? 이하우이하우 간다고 했잖아요." 
"그기 아이고......" 머리를 긁적이며 차를 출발시키는 폼이 이하우이하우를 잘 모르는 눈치다.
"잘 모르면 물어보고 운전하소."
"아, 걱정하지 마이소, 잘 압니더." 
하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두리번거리며 마닐라만 근처로 차를 모는데 갑자기 앞으로 검은 물체 두 개가 휙 지나간다. 차가 급제동을 걸며 비틀거린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뒤를 보니 열 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애들이 후다닥 뛰어가고 있다. 나라도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젊은 기사는 상기된 표정만 잠시, 뒤를 보고 고함(따갈로그는 모르지만 절대 욕은 아니었다.)을 한 번 지르고는 다시 운전을 계속한다. 완전히 기사에게 압도당한 나는 천천히 가도 된다는 말조차 꺼내기 힘겨운 상태다. 다행스럽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이하우이하우를 찾아낸다. 요금에 50페소 정도 더 얹어주고 내렸다. 

이하우이하우 
개구리만한 여자 애 둘이 꽃바구니를 들고 지키고 있다가 꽃을 사 달랜다. 개구리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눈치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개구리 엄마가 개구리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너는 그 애들에 비하면 너무나 행복한 환경에서 배우고 자라는 거란다."라고 한 마디 더 거든 덕분에 개구리는 돌아와서 행동이 전과는 달리 뭔가 모르게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마음이 불편했지만 하나만 사줘도 여러 명이 몰려든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모른 척하고 얼른 이하우이하우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원주민 복장을 한 할머니가 우리나라의 베틀과 비슷한 것을 놓고 원색의 화려한 옷감을 짜고 있는 것이 보인다. 들어가서 이층을 가려하니 뭐가 좀 복잡하다. 나올 때에야 알고 보니 입구 바로 오른쪽에 이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조명이 좀 어둡긴 하지만 제법 들뜬 분위기다. 안내하는 대로 자리에 앉으니 원형으로 된 탁자가 제법 삐걱거린다. 스테이지(랄 것도 없지만)가 잘 보이는 자리로 다시 옮겼지만 탁자가 흔들거리는 건 마찬가지다. 
메뉴를 놓고 가는데 아무래도 로제타석이 있어야만 해석이 될 것 같다. 이건 완전히 고대 상형문자에 버금갈 정도로 복잡한 메뉴판이다. 뭐가 에피타이저인지 코스인지 심지어는 음료수조차 찾을 수가 없다. 이럴 때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본색을 드러내는 거다, '영웅 본색'말고. 
"아가씨, 이거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여기서 우리 식구에게 가장 잘 맞을만한 걸로 추천 해 주실 수 있나요?" 참고로, 어떤 종류의 식당을 가든 모르면 웨이터를 불러 "가장 추천할만한 음식을 골라 달라.", "이건 어떻게 먹는 거냐?" 물어라. 묻지도 않고 아는 척하다 얼굴(이럴 땐 다른 말로 '쪽'이라 그러죠.)파는 것 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음... 한국인이시죠? 그러면 이거랑 이거랑 이거하시면 되겠네요. 한국분들 입맛에 가장 잘 맞다고들 하니까요." 저녁 메뉴는 새우 스프, 라푸라푸(생선) 찜, 해물 볶음밥, 치킨 반마리로 정해졌다. 그러는 중에도 스테이지에서는 계속해서 흥겨운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우리 나라 노래도 가끔 들려준다. 약간의 퍼포먼스가 행해지는가 싶더니 손님 중의 한 사람이 불려 나오고 급기야는 게이 복장을 한 웨이터와 결혼식을 치르는 흉내까지 낸다. 개구리 엄마를 슬쩍 보니 매우 흡족해하는 눈치다. 내가 눈치를 보기를 기다렸는지 개구리에게 한 마디 한다. 
"아빠가 이런 데까지 데려와서 저녁 먹게 해 주시고...... 너무 좋지?" 
개구리는 닭고기만 있으면 행복한 녀석이니까 물어보나 마나지, 뭐. 갑자기 뒤에서 노래 소리가 들린다. 뒤를 보니 계단(입구에서 바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경찰 복장을 한 웨이터가 제법 멋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올라오고 있다. 뒤를 따라 올라 오던 서양인 둘이 뭔가 싶어 멍한 표정으로 뒤에서 올라오지도 못하고 쳐다보고 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손님들의 노래 자랑 시간 비슷하게 되어 가는데 편이 세 갈래로 나뉜다. 한국, 중국, 일본. 음. 개구리 엄마가 대충 쓰라네요. 소설 쓰냐고 그러는데. 그러면 음식맛은 직접 가서 보세요. 견딜만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 중에서는 단체로 온 분들이 나훈아의 '사랑'을 한 곡 부르더니 그만이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설치기 시작한다. 특히 중국인 한 사람은 제법 취한 모양인지 마이크를 잡고 계속해서 불러대고 있다. 30분 가량 지나자 사회자(?)도 미안했던지 한국사람 중에서 더 노래할 사람 없냐고 물어본다. 산미겔도 두 병 마셨겠다. 그래 나가 보자. 
이런, 사회자 양반 내게 묻지도 않고 피아노 반주자에게 우리 나라 노래(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반주를 바로 시킨다. 
"잠깐, 잠깐. 반주 정지. 저기 걸려있는 기타 좀 써도 되나요?" 그러랜다. 
몇 마디 우리말과 영어로 인사말 한 후에 코드와 가사를 다 기억하는 유일한(?) 노래인 바위섬을 부르기 시작했다. 바위섬은 시립합창단원으로 활동할 때 앵콜 레퍼토리로 자주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코드는 C - Em - F - A - Dm - G7의 반복이기 때문에 두 소절 쯤 부르자 반주자가 피아노로 반주를 함께 넣기 시작한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설치는 바람에 주눅들어있던(?) 한국 단체 관광객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분위기 죽이는 거지 뭐.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한 번 더!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살고 싶어라." 
노래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단체 관광객들이 그제야 나가시면서 악수를 청하고 난리가 아니다. "아, 너무 속 시원했어요." "너무 멋졌어요." "결혼 10주년 축하해요, 좋은 여행되세요." ㅋㅋㅋ 
조금 있으려니 중국 아저씨가 다시 비척거리며 나오더니 또 노래를 부르지만 아까의 분위기는 아니다. 먹을 것도 다 먹었고 마실 것도 다 마셨으니 가야지. 일본애들이랑 중국애들이랑 잘 놀아라하고 나오면서 입구에서 베짜고 있던 할머니랑 사진 한 컷. 
입구에서 택시를 타니 기사가 벗어놓은 장갑이 미터기를 가리고 있고 기사는 그냥 출발한다. "메뜨로 딸랑." "아, 제가 깜빡했었네요. 죄송함다." 
깜빡은 무슨. 호텔에 도착해서 팁도 주지 않으려 하다 8페소 줬다. 방에 들어가서 잠겨진 금고와 개구리를 보니 흐뭇하다. 그냥 잘 수 있겠다. ㅋㅋㅋ 개구리는 포기하고 만화 채널을 켜 놓더니 그냥 잔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던 개구리 엄마는 오늘도 투덜거린다. "에이 지저분한 넘들." 
뭔 얘기냐면, 그 넘들(양넘들 모두 싸잡아) 침대 문화라는 건 우리의 안방 문화와는 많이 틀린데 구둣발로 카페트를 밟고 그 카페트를 밟은 발로 침대에 올라가고 심지어는 구두 신은 채로 침대에 올라가기도 하고 뭐 그런 얘기다. 특히 욕실에서 나왔을 때 발 깨끗하게 닦고 깔끔한 방바닥에 올라 설 수 있는 우리 주거 문화와는 달리 욕실에서 나와도 먼지투성이인 카페트를 밟아야 하는 그네들의 문화를 우리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지저분하달 수밖에는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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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벨리, 2차 쇼핑 
옆에서는 개구리랑 개구리엄마랑 비엔비(물풍선 터뜨리는 겜, 아시는 분은 젊은 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방학이라고 새벽 두시까지 하더군요. 
더 이상 미루기는 힘들고 해서 잘 될지는 모르지만 이만 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아마 기억도 많이 희미해졌을테고 하니 그리 길게 쓰여지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다이아몬드 호텔의 조식 
모닝콜 전에 잠은 깨어 있었지만 일어나기가 힘들다. 개구리를 깨우려니 도저히 일어나지를 못한다. 어제 마닐라 시내를 많이 걸어다닌 것도 있지만 그 동안의 피로가 엄청 쌓인 모양이다. 할수 없이 개구리는 그냥 두고 개구리엄마랑 둘이서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초특급이라 그런지 지금까지의 부페 조식과는 아무래도 격이 다르다. 그래 봐야 롯데 호텔의 저렴한 부페보다도 못하지만. 하지만 이 동네 음식이야 아무리 좋아 보았자 우리 부부에게는 화중지병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느끼한 기분이 든다.
햄에다 버터에다 기름기 많은 고기들, 펄펄 날리는 쌀. 후어어어억. 어- 느끼. 김치 총총 썰어넣고 삼겹살 두어 점 같이 넣어 구운 빈대떡에 막걸리 한 사발. 그런 거 좀 없을까?(사실은 조금 전에 그렇게 먹고 알딸딸한 기분에 글 쓰고 있습니다.) 엿새만에 식사량이 많이 줄어든 걸 느낀다. 펄펄 날리는 밥에 약간의 고기 조림과 과일 몇 조각, 다행히 락교를 비롯한 몇 가지 장아찌 비슷한 것들이 있어 그래도 조금 낫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레드코코넛에서의 아침식사는 오픈된 공간에서 풀장과 맑은 햇살과 꽃들과 푸른 바람들과 그런 것들이 있어 분위기만은 참 좋았던 것 같다. 다이아몬드 호텔의 조식 분위기는 그것과는 다르긴 하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간단하게 아침을 마치고 오니 아직도 개구리는 일어나질 못한다. 히든벨리를 가기로 했으니 피곤한 몸을 끌고 짐 챙겨서 나가야지. 개구리가 제일 큰 짐이다. 이넘은 히든벨리 도착할 때까지도 차안에서 내내 자다가 풀장 간다니까 시부적이 일어난다. 

히든 벨리 
히든 벨리도 쓸 게 많기는 하지만 여행팁에서 다루었으니 그것으로 갈음합니다. 

2차 쇼핑 
히든 벨리에서 출발한 시각이 대략 4시 경. 가이드와 길이 어긋나는 바람에 출발이 30분 가량 지연되어 계획했던 나용필리피노는 아무래도 포기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기사에게는 나용필리피노에 갈 예정이라고 해 두었던 때분에 기사는 열심히 차를 운전하고 있다. 길가의 가게들과 노점들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져 온다. 하기야, 물 속에서 여섯 시간을 놀았으니 그럴 밖에. 
참 신기한 게 차를 타서는 눈을 한 번 깜박이기만 해도 이미 도착할 때가 되는 걸 보면 아마 차들이 축지법을 쓰는지도 모를 일이다. 눈을 뜨니 이미 차는 시내 근처에까지 와 있다. 
이미 다섯 시가 넘어 버렸다. 결국 시내로 가서 쇼핑을 하기로 하고 가이드비를 계산한 후 기사에게는 팁과 경비를 지불하려 하니 페소가 조금 모자란다. 가이드가 잠시 기다리라더니 사설 환전소에서 환전을 해 준다. 그 날 하루 중 가이드가 필요했던 건 아마 이때 말고는 없었지 않았나 싶다. 물론, 마닐라 근교 관광에 대해 알고 있을 경우라면. 

※ 참고 : 마닐라 근교 관광, 특히 히든 벨리 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택시를 하루 빌리는 것이 저렴하고 편리할 것 같다. 적절한 사전 지식과 아주 초보적인 회화는 당연히 필수다. 
기사에게 부탁하여 랜드막 앞에서 내렸다. 입구나 분위기는 SM과 별 다르지 않다. 입구 바로 안쪽에는 기획 상품인지 여행용 가방을 전시해 놓고 팔고 있다. 어제 쇼핑을 제대로 못한 탓에 상품의 질이 나쁘더라도 어쨌든 여기에서는 선물을 사야만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상품의 질이 괜찮은 편이다. 특히 유리 제품과 그릇 종류는 가격도 매우 저렴하고 탐이 나는 것이 많다. 3층에 가 보니 제대로 왔다는 생각이 든다. SM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기념품이 많다. 수공예품이 주를 이루는데 아무래도 간단히 쇼핑을 끝낼 일이 아니다. 
그 와중에 개구리가 배가 고프단다. 지하에 졸리비가 있다길래 개구리랑 둘이서 가보니 식료품점도 있다. 졸리비에서 1번 메뉴를 시켜 먹고 3층으로 다시 올라가 개구리 엄마에게 선물을 고르라고 하고는 얼른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어디를 갔냐고? 가방 사러. 개구리가 가지고 다닐 수도 있을만한 크기의 여행용 가방을 2만원 가량에 고르고 3층으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잠시 고르고 있자니. 뭔가 이상하다. 불이 하나씩 꺼진다. 사람들이 모두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고 있다. 허거거거걱! "거시기, 아가씨, 여기 몇시에 문 닫나요?" "8시 30분요." 시계를 보니 8시 35분이다. 몇 개 고르지도 못했는데. "얼른 가서 봐 둔 그릇 가져 와요. 난 기념품 챙겨 갈테니." 후다다닥. 휙. "엄마, 엄마. 이것도 가져가요." 후다다다닥. 난리도 이만저만 난리가 아니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려니 이런! 페소가 모자란다. 맘은 바쁘고. 할 수 있나 카드 써야지. 이럴 때는 짧은 영어 더 잘 안된다니깐. 억지로 계산을 하고(거기서는 좀 이상하게 계산을 한다. 매장의 아가씨가 손님이 산 물건들의 전표를 끊어서 카운터에 가져다 주고 현금인지 카드인지 또 확인하고 잘못 끊었으면 다시 끊고. 사람이 남아도는 건지, 할일없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건지. 여하튼 도무지 이해가 안되더구만.) 
다시 불꺼져가는 지하로 후다닥 뛰어 내려가 미니어쳐 양주 몇 개 사고 말린 망고를 사려니 개구리 엄마가 그걸 뭣하러 사냐고 난리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제일 많이 먹었으면서 말이다. 개구리 엄마의 핀잔을 무릅쓰며 10봉지를 사서 카운터로 오니 우리가 제일 나중이다. 쇼핑 이렇게 정신없이 해보기는 처음이다. 

다이아몬드에서의 저녁 식사 

아무래도 몸도 마음도 지쳐 잠보앙가는 가질 못하겠다. 호텔로 돌아가서 스카이라운지에서 저녁을 먹자는데에 세 사람의 의견이 모두 일치한다. 호텔로 직행한 후 잠시 씻고 스카이라운지로 갔다. 그런데, 진짜 어떻게 시간이 우리를 갖고 노는지 모르겠다. 식당에 들어가려니 조리사 복장을 한 사람 셋이서 식당을 나오고 있다. "죄송함다. 방금 마지막 손님 주문을 받았슴다."
"어..... 여기 몇시까지 하는데요?" 
"10시까지요." 시계를 보니 정확히 9시 58분이다. 
"아직 10시 아니잖아여." 항의(?)를 해 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그냥 씩 웃더니 한 넘이 "저기 칵테일 바에서는 식사 주문이 될 겁니다." 한다. 그래, 그럼 가보자.
"죄송함다. 여기는 애기 데리고 들어가실 수 없슴다."
"왜여?" "여기는 흡연구역이라 그렇슴다.
" "괜찮아여, 그냥 밥만 먹으면 되여." 
"저, 애기가 몇 살이져? 열 여섯살 넘었남여?" 오잉? 뭔 소리? "저... 거시기... 8살인디여." 
"그럼 안되여." 딱 잘라 말한다. 
투덜투덜. 터덜터덜. 앞의 소리는 우리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고 뒤의 소리는 우리 발에서 나는 소리이다. 이거 이러다 밥도 못 먹는 거 아냐? 
"솔이 아빠. 룸서비스 시키면 안되나?" 그렇다! 룸서비스가 있구만. 
근데... 전화로 하는 영어는 자신 없다. 이건 손짓 발짓이 안 보이니 말이다. 개발소발하는 내 영어를 개구리엄마는 아주 고급으로 아나보다. 어쨌든 굶을 수야 없지 않은가. 개구리도 저리 빤히 쳐다 보는데. 
"그래, 그럼 먹고 싶은 거 골라 봐." 그래놓고는 얼른 가져간 손바닥 만한 영어회화 책을 첨으로 컨닝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룸서비스 메뉴를 보더니 개구리는 피자, 개구리 엄마는 우동을 시킨다. 끝에 보니 할로할로가 있어 난 그걸로 하기로 했다. 
이젠 전화를 걸어야지. 침착하자. 에. 'I would like to... 그 담엔 뭐라 그러면 되나?' 거 참. 에라 모르겠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룸서비스 서."
"어... 이즈 이트 파스블 투... 어... 오더 썸... 섬씽 투 이트?"
"예스 서." "
어...... 아이 우드 라이크 투......" 
"왓 넘버, 서?" 
'엇! 이런, 건방진 것 보게나. 왜 말을 끊고 그래. 고맙긴 하지만.' 
"오케이, 아이 씨. 어... 넘버 어... 어 피스 오브 핏자 앤드... 어... 메뉴 넘버 어... 식스 오브 저패니즈 앤드 어... 원 할로할로, (한참 있다가)플리즈." 
참 나. 이거 내가 썼지만 써 놓고 봐도 이게 말이가 글이가. 걱정 말자. 그래도 알아 듣는다. 어케 아냐고? 
"죄송함다만 지금 우동은 안되는디요." 
"어... 저스트 모먼트 플리즈. 솔이 엄마. 우동 안된데." 여기에서 지금까지 유창한 사투리로 대화를 한 것처럼 쓴 글들이 사실은 위의 대화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음...... 글이나 계속 쓰자. 피자는 꽤나 맛있었다. 라면은 별로. 겨자 덩어리 비슷하다. 할로할로도 별로. 얼음이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양도 적고. 
개구리 엄마랑 스카이라운지를 가려하니 어쩐 일인지 개구리가 순순히 그러랜다. 하기야, 개구리는 만화 채널 보는 게 더 좋을 게다. 그래, 오늘 저녁엔 엄마랑 둘이서 기분 좀 내고 오마. 

에궁. 또 다음에 이어 써야겠네요. 다음은 진짜 마지막입니다. 
다음 글에서 나올 내용들. 
1. 다이아몬드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
2. 공항으로 
3. 집으로 

마지막 
오늘이 마지막 글입니다. 그동안 개구리네 가족 여행기에 적지않은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합니다. 그래도 쓰다 보면 혹시 한 회 더 늘어날지도. -_-;; 
짧게 써야지써야지 하면서도 언젠가 우리 개구리가 이 글들을 읽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쓸데 없는 말들이 많이 들어가네요. 

1. 다이아몬드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 
필에서의 마지막 밤, 우주의 신비스러운 느낌이 드는 스카이라운지라고 말로만 듣던 다이아몬드 호텔의 스카이라운지를 개구리를 떼어놓고 갈 수 있게 되었다. 니켈로디온 채널만 보겠다는 개구리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창가에 앉으시겠습니까?"
"당근이져."
"이쪽으로 오시죠."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 
산미겔 하나, 칵테일(벌써 기억이 안나는구만요.) 하나. 늘씬하기 짝이 없는 아가씨가 한 마디 더 한다. 
"창가에 앉으셨으니 그렇게 드시더라도 기본 요금은 내셔야 합니다."
허걱! 선전 포고! "어... 얼만디요? "800페소입니다." 머리속으로 얼른 주판알을 팅겨보니(나도 개구리 엄마도 주판알 갖고 놀던 시절의 상고 출신이다.) 자그마치. 이마넌! 뽀효효. 우습쥐. 개구리 엄마랑 잘 가는 이너네셔날 호텔의 팝레스로랑에서 맥주 둬잔 마시고 안주 하나 먹으면 5마눠는 기본인디. 그래, 맘껏 포격 당하마. 아직 호주머니엔 $800 넘게 남아있다. 우습쥐. 
야경은. 뭐 별로구만. 우주의 신비스러운. 뭐. 천정엔. 별똥이 가끔 떨어지긴 하네. 가 보믄 압니다. 요즘 말로 아�m�m하더이다. 
신혼 여행때보다 더 예쁜지 아닌지 모르지만 어쨌든 개구리 엄마 보고 있으려니 산미겔이 술술 넘어간다. 조금 띵띵하긴 하지만 싱어도 예쁘장하니 노래도 잘 헌다. 병이 비어 손을 치켜드니 늘씬한 웨이트리스가 다가온다. 그네들의 관습을 깜빡잊고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그렸더니(조금 크게 그렸는데도) 
"벌써 가시려구요? 여기 계산서요!"
"아... 그기 아이구요. 메뉴판요." 
근데, 메뉴판을 뭐라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뭐라 그랬더라? 담에 가면 메뉴판 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만. 어쨌거나 산미겔만 다섯 종류를 시키고 과일 안주 하나랑 합쳐 800페소를 약간 넘게 마셨다. 
마시고 있으려니 예순은 분명 넘었음이 분명한 서양 할메 한 분이 나오시더니 카수 대신 노래를 멋지게 부른다. 카수가 자기 타임을 다 마치자 할메는 아예 피아노를 차고 앉는다. 가만히 보니 남편인듯 싶은 영감님은 가벼운 와이셔츠 차림인데 할메는 완전한 드레스 차림이다. 할메는 멋드러진 솜씨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한마디로. 멋지다. 나이가 들어서도 저렇게. 분위기 쥑인다. 나가서 할메 반주에 노래 한 자락 하고 싶었지만 영어 가사는 완전하게 아는 것이 없어. 

2. 공항으로 체크아웃. 
세 번째니 뭐 별로 힘든 건 없군. 근데 왜 마시지도 않은 콜라값은 달라카는지. 덕분에 10분 가량 시간이 더 걸린다. 
"호텔 택시 쓰실 거죠?"
"천만에. 그냥 미터 택시 탈거요."
"......" "......" "......" 
"그런데 호텔 택시 타면 공항까지......" 
"헤이! 택시!" 
"어어... " 어느새 호텔 택시가 앞에 서있다. 
씨이이. 그기 아인데. 할 수 없지. "얼마죠?"
"400페소요." 
"음......" 뒤적뒤적. "지금 공항세 내고 나면 남는 게 250페소 밖엔 없는데......" 
"음...... 그거라도 주쇼." 
80페소면 충분할 거리를 250페소를 주고 가는 나도 억울하지만 택시 기사도 독한 넘 만났다 싶었을 게다. 그래서 내릴 때 호주머니에 있는 동전 다 긁어 줬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군. 
그런데, 바로 옆이 나용 필리피노인데 가지를 못한다. 티켓 끊고 나서 시계를 보니 두 시간쯤 남았다. 공항 카운터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택도 없댄다. 
면세 구역으로 들어서니 많이 보던 사람들이 있다. 꼬뿌니님이랑 친구분이구만. 두 번의 쇼핑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우리로서는 면세 구역에서 추가로 말린 망고 몇 개 더 사고 기타 등등. 산미겔 캔이 보인다.
"저, 이거 1인당 얼마나 갖고 갈 수 있나요?" 
"24개요." 
"열 다섯개 주세요." 이거 참말로 후회스럽다. 우리 나라에서는 산미겔이 수천원이라메? 엑스필 못잖게 맛있는 맥주를 말이다. 

3. 집으로 
뱅기는 활주로를 달린다. 차창 밖으로 머얼리 야자수가 지나간다. 언제 저 야자수를 다시 보게 될까? 비행기가 수평을 잡자 기내식이 나온다. 마찬가지이다. 궁금하면(궁금할 것도 없지만.) 개구리네 가족 여행기 3번을 보기 바란다. 
"아빠, 원 카드" 
"잠시만. 여기 카드 좀 주실래요?"
"없슴다." 
오는 뱅기가 분명 더 큰데도 카드가 없단다. 식사를 마치자 또 게임을 한다. 어차피 가방 하나 있는 거니 그다지 욕심은 없다. 비행기 아래 구름이 산뜻하다. 눈온 날의 대관령같다. 어느새 개구리는 코를 골며 자고 있다. 하기야, 아무리 탄탄한 놈이래두 어린 녀석이 일주일의 해외 여행이 만만치는 않았을 게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새 비행기 아래로 개펄이 보인다. 우리 나라다. 
띠리리... 띠리리 "예, 어머니 잘 다녀왔습니다. 지금 비행기입니다. 공항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꼬뿌니님을 잠시 기다려 스쿠버 다이빙 사진을 받았다. 
띠리리... 띠리리 "형, 나야. 지금 오는 길." "응, 그래, 우리가 2:0으로 이기고 있다." "응, 그래. 알았다. 방학 때 보자. 바빠서 못들르고 그냥 내려 간다." 
근데 2:0이라니 먼 말? 옆에 사람들이 우리가 프랑스에게 2:0으로 이기고 있다고 하는 얘기가 간간이 들린다. 
산타모는 얌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 집으로!"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붉은 해가 인천만의 개펄을 물들이고 있었다. 

4. 사족 
집으로 오는 길에 첫 휴게소(어디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에 들러 사발면과 소고기국밥과 선지국과 푸짐한 김치를 맘껏 먹었다. 행복했다. 역시 우리 음식이야. 

5. 結 

이건 마침표가 아니다. 쉼표다. 개구리는 다음 여행은 중국으로 가잰다. 
여행 후의 우리 가족이 얼마나 더 서로를 생각해 줄 수 있게 되었고 하는 등의 뒷 얘기는 아마 한참 후에 써야 할 것 같다. 결국 오늘도 개구리네 가족 여행기는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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