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02 필리핀

SM, 이하우이하우

by 개굴아빠 2012. 12. 23.

(02년 aqua사이트에 올렸던 필리핀 보라카이 자유 여행기를 옮긴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호텔에서 시내 나가기 전의 일에 대해 잠깐 한 자 적어야겠다. 호텔 체크인한 후에 짐을 정리하느라 개구리엄마랑 잠시 감시를 소홀히 하는 사이에 개구리가 자그마한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삑삑 삑삑" 

'뭔 소리야, 이거?' 

"아빠, 이거 안 열려요." 

고급 호텔의 세이프티박스는 암호를 리셋할 수 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사용자가 귀중품을 넣은 후 암호를 세팅하고 문을 닫으면 그 암호를 알아야만 열 수 있는데 개구리가 귀중품(개구리한테는 매우 귀중한 것)을 넣고는 암호를 잊어버린 것이다. 

"이런! 인석아, 뭘 넣었니?" 데스크로 연락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짧은 영어가 부담스러워지려는 순간 개구리 엄마가 옆에서 눈짓으로 도와주질 말랜다. 

"그래, 뭘 넣고 잠궜니? " 

"카드요." 

이런 횡재가! 얼씨구나! 무슨 얘기냐면, 필리핀 가는 비행기에서 얻은 트럼프로 개구리가 밤마다 밤마다 원카드 하자는 바람에 머리에 쥐가 나려는 상황이었는데 개구리가 그 트럼프를 세이프티 박스에 넣고 잠궈 버린 것이다. 물론 버튼도 아무렇게나 눌러 기억도 하질 못하고. 

"안된다. 암호 모르면 아빠도 이거 못 연다. 열려면 호텔에서 사람 오라 그래야 되고 돈 많이 줘야 된다. 에이, 나중에 쇼핑 갔다와서 원카드 하려 그랬더니. 그냥 포기하고 얼른 쇼핑이나 가자꾸나." 속에도 없는 말을 하는 나 스스로가 가증스럽다. ㅋㅋㅋ 개구리는 못내 아쉬운 눈치다. 체크아웃하고 방정리 하던 사람이 금고 안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내내 궁금했다, 지금도. 


SM에서

계속해서 SM 쇼핑 얘길 써야할 차례지만 쓸 게 거의 없다. 어쨌든 이어서 써 보자. 시청 앞에서 지프니를 내렸지만 SM을 찾을 수가 없다. 뭐, 또 물어보면 되지. 젊은 아줌마를 붙잡고 또 안되는 영어로 물어 봤다. 

"거시기, SM 갈라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되죠?"

"따갈따갈 따갈따갈" 허걱! 

"그기 아이고예, 나 따갈로그 못해예." 

옆에서 지켜보던 개구리 엄마가 결국 한 마디 더 보탠다."입국할 때부터 필리핀 사람처럼 취급된다 싶더니."(여행기 세 번째에서 언급했었죠?) 

이건 절대로 아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난 눈도 작고 쌍꺼풀도 없고... 절대로 필리피노처럼 생기질 않았다. 하지만, 이튿날 히든벨리와 랜드막 백화점에서 또 다시 필리피노 대접을 받고야 말았다. 

SM몰 입구에는 4명 정도의 사설 경비가 경비를 서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한 줄로 들어가고 나가고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쉴새없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시각이 금요일 4시쯤이니 우리 나라 같으면 한참 일할 시간이다. 하지만,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보니 이해가 잘 가질 않는다. 어쨌거나 여기 온 목적은 그네들이 왜 일을 하지 않고 쇼핑이나 다니는 지 조사하러 온 것이 아니므로 경비에게 기념품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으로 조사를 끝내자. 

2층에 있다는구만. 하지만 가보니 이건 영 아니다. 하나도 사질 못했다. 나머지 생필품들도 질이 영 아니다. 의류의 경우 바느질이 너무 부실한데다 많은 품목이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저급품이다. 쇼핑은 깨끗이 포기. 이하우이하우나 가야지. 듬직하게 보이는 여경비를 붙잡고 물어봤다. 

"이하우이하우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모르는데요."(생글생글 웃으며) 

"그러면 택시를 타려면 어디로 나가야......" 

"모르는데요."(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저 그러면 출구는......"

"모르는데요."(아직까지 생글생글 웃으며) "

-__-;;...... Thank you, anyway."(thank 대신 F로 시작하는 넉 자 짜리 단어를 쓸 뻔 했다.) 기가 막혀! 

어쨌든 둘러보니 문 비스므리한게 보인다. 나가보니 이거 또 아니다. 아마도 짐을 부리는 곳이거나 아니면 . 여하튼 출구는 아닌 것 같다. 문을 지키던 경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본다. 나도 멀뚱멀뚱 쳐다볼 밖에. '이거 또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어보면 또 무시당하지 않을까? 근데, 저 양반 영어는 제대로 되나? 뭘 자꾸 쳐다보는 거야, 나도 미치겠는데..' 경비가 다가오려는 순간 옆에 택시가 서더니 사람이 내리고 곧 출발하려 한다. "잠깐! 이하우이하우 갈 수 있나요?" "어. 여기는. 어. 타는 곳이 아닌데요." 

" ....." 

하지만, 잠시 기다리라더니 경비에게 뭐라 그러고는 우리더러 타랜다. 눈치를 보아하니 '쟤들 불쌍하니 좀 봐주지요.'라고 했을 것 같다. 

"대신 40페소 더 얹어주셔야 됩니다." 뭐, 그래 천 원 더 얹어 주는 거 어렵냐. 제대로만 가 다오. 그런데, 이 기사 지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첨에 택시를 타면서 잠보앙가와 이하우이하우 중 어디가 가족이 식사하기에 좋으냐고 물었더니 별 차이는 없을 거라길래 그러면 오늘은 이하우이하우 가쟀더니 이 양반 한참 차를 몰고 가더니 잠보앙가 앞에 차를 세운다.

"어? 이하우이하우 간다고 했잖아요." 

"그기 아이고......" 머리를 긁적이며 차를 출발시키는 폼이 이하우이하우를 잘 모르는 눈치다.

"잘 모르면 물어보고 운전하소."

"아, 걱정하지 마이소, 잘 압니더." 

하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두리번거리며 마닐라만 근처로 차를 모는데 갑자기 앞으로 검은 물체 두 개가 휙 지나간다. 차가 급제동을 걸며 비틀거린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뒤를 보니 열 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애들이 후다닥 뛰어가고 있다. 나라도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젊은 기사는 상기된 표정만 잠시, 뒤를 보고 고함(따갈로그는 모르지만 절대 욕은 아니었다.)을 한 번 지르고는 다시 운전을 계속한다. 완전히 기사에게 압도당한 나는 천천히 가도 된다는 말조차 꺼내기 힘겨운 상태다. 다행스럽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이하우이하우를 찾아낸다. 요금에 50페소 정도 더 얹어주고 내렸다. 


이하우이하우 

개구리만한 여자 애 둘이 꽃바구니를 들고 지키고 있다가 꽃을 사 달랜다. 개구리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눈치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개구리 엄마가 개구리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너는 그 애들에 비하면 너무나 행복한 환경에서 배우고 자라는 거란다."라고 한 마디 더 거든 덕분에 개구리는 돌아와서 행동이 전과는 달리 뭔가 모르게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마음이 불편했지만 하나만 사줘도 여러 명이 몰려든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모른 척하고 얼른 이하우이하우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원주민 복장을 한 할머니가 우리나라의 베틀과 비슷한 것을 놓고 원색의 화려한 옷감을 짜고 있는 것이 보인다. 들어가서 이층을 가려하니 뭐가 좀 복잡하다. 나올 때에야 알고 보니 입구 바로 오른쪽에 이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조명이 좀 어둡긴 하지만 제법 들뜬 분위기다. 안내하는 대로 자리에 앉으니 원형으로 된 탁자가 제법 삐걱거린다. 스테이지(랄 것도 없지만)가 잘 보이는 자리로 다시 옮겼지만 탁자가 흔들거리는 건 마찬가지다. 

메뉴를 놓고 가는데 아무래도 로제타석이 있어야만 해석이 될 것 같다. 이건 완전히 고대 상형문자에 버금갈 정도로 복잡한 메뉴판이다. 뭐가 에피타이저인지 코스인지 심지어는 음료수조차 찾을 수가 없다. 이럴 때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본색을 드러내는 거다, '영웅 본색'말고. 

"아가씨, 이거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여기서 우리 식구에게 가장 잘 맞을만한 걸로 추천 해 주실 수 있나요?" 참고로, 어떤 종류의 식당을 가든 모르면 웨이터를 불러 "가장 추천할만한 음식을 골라 달라.", "이건 어떻게 먹는 거냐?" 물어라. 묻지도 않고 아는 척하다 얼굴(이럴 땐 다른 말로 '쪽'이라 그러죠.)파는 것 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음... 한국인이시죠? 그러면 이거랑 이거랑 이거하시면 되겠네요. 한국분들 입맛에 가장 잘 맞다고들 하니까요." 저녁 메뉴는 새우 스프, 라푸라푸(생선) 찜, 해물 볶음밥, 치킨 반마리로 정해졌다. 그러는 중에도 스테이지에서는 계속해서 흥겨운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우리 나라 노래도 가끔 들려준다. 약간의 퍼포먼스가 행해지는가 싶더니 손님 중의 한 사람이 불려 나오고 급기야는 게이 복장을 한 웨이터와 결혼식을 치르는 흉내까지 낸다. 개구리 엄마를 슬쩍 보니 매우 흡족해하는 눈치다. 내가 눈치를 보기를 기다렸는지 개구리에게 한 마디 한다. 

"아빠가 이런 데까지 데려와서 저녁 먹게 해 주시고...... 너무 좋지?" 

개구리는 닭고기만 있으면 행복한 녀석이니까 물어보나 마나지, 뭐. 갑자기 뒤에서 노래 소리가 들린다. 뒤를 보니 계단(입구에서 바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경찰 복장을 한 웨이터가 제법 멋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올라오고 있다. 뒤를 따라 올라 오던 서양인 둘이 뭔가 싶어 멍한 표정으로 뒤에서 올라오지도 못하고 쳐다보고 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손님들의 노래 자랑 시간 비슷하게 되어 가는데 편이 세 갈래로 나뉜다. 한국, 중국, 일본. 음. 개구리 엄마가 대충 쓰라네요. 소설 쓰냐고 그러는데. 그러면 음식맛은 직접 가서 보세요. 견딜만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 중에서는 단체로 온 분들이 나훈아의 '사랑'을 한 곡 부르더니 그만이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설치기 시작한다. 특히 중국인 한 사람은 제법 취한 모양인지 마이크를 잡고 계속해서 불러대고 있다. 30분 가량 지나자 사회자(?)도 미안했던지 한국사람 중에서 더 노래할 사람 없냐고 물어본다. 산미겔도 두 병 마셨겠다. 그래 나가 보자. 

이런, 사회자 양반 내게 묻지도 않고 피아노 반주자에게 우리 나라 노래(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반주를 바로 시킨다. 

"잠깐, 잠깐. 반주 정지. 저기 걸려있는 기타 좀 써도 되나요?" 그러랜다. 

몇 마디 우리말과 영어로 인사말 한 후에 코드와 가사를 다 기억하는 유일한(?) 노래인 바위섬을 부르기 시작했다. 바위섬은 시립합창단원으로 활동할 때 앵콜 레퍼토리로 자주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코드는 C - Em - F - A - Dm - G7의 반복이기 때문에 두 소절 쯤 부르자 반주자가 피아노로 반주를 함께 넣기 시작한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설치는 바람에 주눅들어있던(?) 한국 단체 관광객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분위기 죽이는 거지 뭐.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한 번 더!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살고 싶어라." 

노래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단체 관광객들이 그제야 나가시면서 악수를 청하고 난리가 아니다. "아, 너무 속 시원했어요." "너무 멋졌어요." "결혼 10주년 축하해요, 좋은 여행되세요." ㅋㅋㅋ 

조금 있으려니 중국 아저씨가 다시 비척거리며 나오더니 또 노래를 부르지만 아까의 분위기는 아니다. 먹을 것도 다 먹었고 마실 것도 다 마셨으니 가야지. 일본애들이랑 중국애들이랑 잘 놀아라하고 나오면서 입구에서 베짜고 있던 할머니랑 사진 한 컷. 

입구에서 택시를 타니 기사가 벗어놓은 장갑이 미터기를 가리고 있고 기사는 그냥 출발한다. "메뜨로 딸랑." "아, 제가 깜빡했었네요. 죄송함다." 

깜빡은 무슨. 호텔에 도착해서 팁도 주지 않으려 하다 8페소 줬다. 방에 들어가서 잠겨진 금고와 개구리를 보니 흐뭇하다. 그냥 잘 수 있겠다. ㅋㅋㅋ 개구리는 포기하고 만화 채널을 켜 놓더니 그냥 잔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던 개구리 엄마는 오늘도 투덜거린다. "에이 지저분한 넘들." 

뭔 얘기냐면, 그 넘들(양넘들 모두 싸잡아) 침대 문화라는 건 우리의 안방 문화와는 많이 틀린데 구둣발로 카페트를 밟고 그 카페트를 밟은 발로 침대에 올라가고 심지어는 구두 신은 채로 침대에 올라가기도 하고 뭐 그런 얘기다. 특히 욕실에서 나왔을 때 발 깨끗하게 닦고 깔끔한 방바닥에 올라 설 수 있는 우리 주거 문화와는 달리 욕실에서 나와도 먼지투성이인 카페트를 밟아야 하는 그네들의 문화를 우리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지저분하달 수밖에는 없다는 얘기다. 

공감하시면 추천 꾹, 공감 안 하시면 추천 두 번 꾹꾹. 

'02 필리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0) 2012.12.23
히든 벨리, 2차 쇼핑  (0) 2012.12.23
출 보라카이, 마닐라 방황하기  (0) 2012.12.18
데이빠뀌지, 체험다이빙  (0) 2012.12.18
호핑 투어  (0) 201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