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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필리핀

호핑 투어

by 개굴아빠 2012. 12. 17.

(02년 aqua사이트에 올렸던 필리핀 보라카이 자유 여행기를 옮긴 것입니다.)


레드코코넛의 아침 식사 

8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를 하러 레드코코넛의 식당으로 향했다. 2인용 식사 쿠폰을 보여주니 종업원이 2인 식사 준비가 된 식탁으로 안내를 한다.

나이프와 포크가 2벌 밖에는 없다. 할 수 있나, 음식을 약간 많이 가져와 개구리랑 나누어 먹어야지. 그런데, 부페(? 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음식 진열한 곳에 "남기지 마시고 나누어 먹지 마시오."라고 적혀있다. 눈치를 봐 가며 음식을 약간 넉넉하게 가져와 개구리, 개구리 엄마랑 함께 식탁에 앉으려니 쿠폰을 받았던 맘씨 좋게 생긴 총각(?)이 살짝 미소를 짓더니 나이프와 포크를 한 벌 더 가져다 준다. 뿐만 아니라, 계란 프라이 부치는 곳에서 프라이를 달라고 하니 이 친구가 직접 세 개를 부쳐서 테이블까지 가져다 준다. 계속 옆에서 신경쓰이지 않게 지켜보는가 싶더니 개구리가 계란을 입 주위에 묻히자 말없이 냅킨도 가져다 준다. 사흘 동안 몇 마디 말밖에 못 나누었지만(이 동네 사람들은 항상 패키지인지 아닌지를 꼭 물어본다.) 참 마음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카운터와는 너무 다르다. 식사의 질은 최악이었지만(그래도 개구리는 너무나 잘 먹었다.) 수영장이 있는 정원을 보며 식사 하는 분위기도 좋았고 식당 종업원들 모두가 친절했다. 


호핑 투어 - 스노클링 


어제 저녁 7시에 아쿠아리우스에서 꼬뿌니님 일행과 함께 섬처녀님을 만나 호늘의 호핑투어에 대해서는 미리 얘기를 해 둔 상태다. 아는 게 있나, 섬처녀님 얘기 들으며 그냥 "네, 네" 하는 것으로 준비 끝. 랩스터 두 마리, 망고 크랩 네 마리, 새우 열마리, 닭 두마리, 과일들, 고구마, 바베큐용 숯, 맥주 넷, 음료수 넷, 미네랄 워터 넷, 낚시용 미끼, 스노클링 장비 다섯 벌. 

호핑투어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모집 호핑과 개별 호핑. 모집 호핑은 싼 반면 음식에 해물이 포함되지 않으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므로 다소 불편한 점이 있지만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다고 한다. 개별 호핑은 인원이 5명 정도만 된다면 개별 호핑과 거의 비슷한 가격에 즐길 수 있으며 음식에 크랩과 새우 등의 해물이 포함이 되고 배가 욕할 때까지 먹을 수 있으며 거의 마음먹은 대로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10시에 아쿠아리우스에 모였더니 현지인 총각 하나와 꼬마 하나가 짐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짐을 든 총각이 앞장을 서고 꼬뿌니님 일행, 우리 가족, 꼬마의 순으로 골목을 걸어 메인로드로 향했다. 꼬마가 커다란 음식물 봉지를 양 손에 들고 힘겹게 뒤따라 오는 것을 본 개구리 엄마가 나를 부른다. 얼른 달려가 봉지 하나를 달랬더니 미안해 하는 눈치이면서도 하나를 준다. 

이름은 '또또', 열 세 살, 초등학교 6학년이란다. 아마 방학이라 일하고 있나 보다. 망고 나무가 어떤 건지 물어보니 길 옆의 집 안에 있는 큼직한 나무를 가리킨다. 잘 살펴보니 하나도 망고나무 같게 생기지 않은 나무가 파란 망고를 달고 있다. 이 동네 망고 나무란 게 우리 나라 시골에 있는 감나무와 비슷한 성격인가 보다. 집집마다 한 두 그루씩은 있고 동네 꼬마들은 주인 눈치 봐가며 서리도 하는... 

15분 여를 '또또'랑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며 걸어가고 있자니 눈 앞에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다. 지도에는 '불라복'으로 표시되어 있는 화이트비치 반대편 해변이다. 화이트비치에는 바람이 세어 파도가 일었으나 이곳은 정말 호수 같다. 물도 너무나 맑고 잔 파도조차 일지를 않는다. 


방카를 타고 20분 가량 달리며 주변의 경치와 바다를 구경하고 있자니 옆에서는 개구리 엄마가 개구리 온 몸에 선크림을 떡칠하고 있다. 스노클링을 할 장소에 다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일행이 모두 머뭇거리는 눈치다. 얼른 스노클과 구명조끼를 착용한 후(수영 조금만 할 줄 아셔도 구명조끼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선배여행자들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 윗도리는 그대로 입고(안그러면 등이 타서 견디기 힘들단다.) 바닷물에 몸을 담궜다.

머리를 물 속에 담그는 순간...... ^*^%0$#*@*&^%* @*&^%*&*^%0$#* ^0$#*@*&^%*0$% ...... ...... ...... 정말 이랬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직접 해 보셔들. 


개구리는 그렇게 설득을 해도 머리만 잠시 1초 가량 담그더니 절대 물에 안들어 가겠단다. 눈도 작은 놈이 겁은 많아서리 결국 개구리가 스노클링을 하지 않은 건 우리 여행 중 가장 아쉬운 일이 되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개구리 엄마는 배 옆에 붙은 막대기를 잡고 거기서만 바닥을 보고 있더니 나더러 좀 잡아 달랜다. 처음 5분 가량은 내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다니더니 나중에는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다. 






호핑투어 - 바베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물밑을 보며 돌아다니고 있자니 2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가버린 모양이다. 다시 20분 가량 방카를 타고 크리스탈 섬으로 향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식탁이 마련되어 있고 옆자리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마쳤는지 기타를 치며 필리핀 노래를 부르고 있고 스모 선수 같이 생긴 허연 놈 하나만 닭다리를 뜯고 있다. 총각(빅)과 또또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개구리 엄마, 꼬뿌니님과 같이 온 분과 함께 섬 구경을 하기로 했다. 꼬뿌니님과 개구리는 움직이기 싫은지 그냥 앉아 있겠단다. 하기야, 개구리는 우리가 스노클링하는 동안 혼자 배 안에만 앉아 있었으니 재미도 없고 속도 불편할 거고, 그래도 처녀 총각만 남겨 두고 가는 게 아닌데..

20미터 정도 길을 따라 가니 몇 가지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능선에 서 있다. 능선에 위치한 조형물들이므로 사진 찍기에는 그만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 카메라로 찍더라도 사진을 찍으면 뒤로 위치할 바다와 섬들이 희미하게 보이고 인물은 뚜렷하게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돌아와서 사진을 찾아보니 수동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신혼부부인양 온갖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다가 돌아와 보니 옆 자리에 있던 스모선수 같이 생긴 사람이 "코리안?"하고 묻는다. 간단하게 물으면 간단하게 답해야지. "예스." 자기를 가리키며 "재패니즈."하더니 악수를 청하면서 "월드컵, 코리아, 재팬. 베리 굳." 한다. 짜아식, 생긴 것도 그렇더니 영어는 나보다도 못하나 보다. 

옆자리의 사람들이 노래를 그치길래 기타를 빌려 함께 노래를 불렀다. 기타를 안 친지 10년이 넘었으니 제대로 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래도, 시원한 그늘 아래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으려니 정말 휴가 기분이 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양놈들 휴가란 게 진짜 휴가란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일년에 겨우 대엿새 가장 복잡할 때 한꺼번에 휴가란 걸 받아 한꺼번에 바닷가로 몰려 한거번에 바가지에 더위에 교통 체증에 시달리다 다시 한꺼번에 돌아오는 게 휴가이니 말이다. 


빅과 또또가 음식을 날라 온다. 꼬치 종류는 따로 장식을 하지 않아도 먹음직스럽고 과일들도 머슴애들답지 않게 멋을 내어 놓았다. 먹기에 아까울 정도다. 하지만, 스노클링 하느라 지친 배들이 요동을 치고 있다. 다들 눈치보느라 랩스터보다는 만만하게 생긴 망고 크랩에 손이 간다. 사실 랩스터보다는 망고 크랩이 더 맛있다는 중론이었다. 꼬치에 꿰어놓은 새우는 거의 20센티미터 가량에 굵기는 엄지 손가락만하다. 새우 한 마리 먹었더니 배가 벌떡 일어나는 기분이다.

인간이 배고픔을 느끼는 건 위가 비어서가 아니라 피 속의 포도당이 일정치 이하로 내려가면 배고픔을 느끼게 되어 있다. 따라서, 배가 고플 때에는 가장 빨리 포도당으로 변할 수 있는 탄수화물(특히 당분)을 섭취하면 배고픔이 쉬 사라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단백질은 열량도 탄수화물의 반밖에 되지 않거니와 포도당으로 변하는 데에는 만만치않은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것처럼 느껴지게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음식들에 자꾸 손이 간다. 위는 아마 포화상태이겠지만 아직 포도당으로 변화되지 않은 탓인지 자꾸 손이 가고 있다. 고구마의 맛도 다른 분들의 말마따나 '환상적'이다. 랩스터 반마리, 크랩 한 마리, 새우 세 마리, 치킨 두 조각, 맥주 두 캔, 고구마 반 개, 공기밥 한 그릇, 파인애플 4분의 1조각. 결국 소화제를 먹고서도 나는 그날 저녁과 뒷날 아침을 아예 먹지를 못했다. 소화제를 먹은 건 머리털나고 두번 째다.


호핑투어 - 크리스탈 케이브 

식사를 마치니 예약된 네 시간이 이미 지나가 버렸다. '빅'에게 얘기를 해 배를 두 시간 더 빌리고 낚시도 하겠다고 하니 낚시는 안된단다. 미끼를 준비하지 않았단다. 이게 뭔 소리. 아침에 받은 준비물 계산서를 보니 '미끼'는 없다. 그냥 낚시를 포기할까 일행에게 물어보니 '죽어도' 낚시는 해야겠단다. '빅'에게 미끼를 사오라고 보내놓고서는 식사 전에 산책을 갔던 곳에서 보아 둔 동굴로 갔다. 능선 바닥에 직경이 80cm 정도 된 구멍이 바닥을 향해 뚫려있고 그 구멍 안의 계단을 내려가니 시원한 공기와 함께 마치 풀장 같은 곳이 나온다. 물의 깊이는 1m 40정도. 이번에는 구명 조끼없이 스노클만 착용하고 헤엄쳐 다녔다. 처음에는 발이 닿는 곳만 헤엄치며 잠수도 했었지만 조금 자신이 생겨 내 키가 넘는 곳으로 헤엄쳐 다니며 바닷속을 감상했다. 그렇게 까불다. 죽을 뻔 했다. 갑자기 숨대롱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왔고 물 빼기에 실패한 후. 허둥지둥.에이 몰라. 어쨌든 아직 살아 있다. 

개구리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구명 조끼 입고 혼자 잘 다니고 있다. 발이 닿는 곳으로 다시 가 조금만 까불고 있었더니 '빅'이 돌아와 낚시하러 가잰다. 


호핑투어 - 낚시 

'빅'이 배를 다시 10분 가량 몰더니 한 곳에 세운다. 낚시는 오전에 잘 된단다. 지금은 생선들이 배가 불러 낚시가 잘 안된단다. '미끼'(미끼가 영어로 뭔지는 나는 모른다. 하지만 '빅'은 미끼가 우리말로 뭔지 알고 있었다.)는 새우. 그런데, 새우가 식사 때 먹던 것 보다는 작지만 우리 엄마 보시면 "이런 망할 눔들, 젯상에 올리는 새우보다 큰 걸로 생선 밥을 줘. 아이구 베락 맞아 죽을 눔들!" 하실만큼 크다. 


낚시 장비는 초현대식인데 약간 파손된 최신식 음료수 빈 플라스틱 병에 칭칭 감아놓은 낚시줄과 그 끝에 달린 봉돌과 낚시 바늘 두 개가 전부다. '우리'는 물고기가 날 잡아잡슈하고 기다리기만 하는데 배 앞전에서 낚고 있는 '또또'가 한 마리 건져 낸다. 알록달록한 그 색깔에 여자들이 감탄을 한다. 내 낚시 도구는 개구리에게 뺏긴 지 오래다. 잠시 후에는 '빅'이 같은 놈을 한 마리 건져 낸다. 잠시 뒤에 다시 '또또'가 까무잡잡한 놈 한 마리를 건져 낸다. 


우리 '선수'들은 기가 죽어 있다. 그렇게 '또또'와 '빅'이 건져내는 걸 감상만 하고 있더니 드디어 개구리가 우리 '선수'로서는 최초로 한 마리 건져낸다. 연이어 꼬뿌니님과 친구분도 한 마리씩 건져내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걸로 끝. 개구리 엄마는 열심히 고기밥 줬다. 아마 녀석들 배불리 먹었을 게다. 생선들이 개구리 엄마가 멕인 새우 조각 때문에 배가 부른지 이제는 어신도 없다. 


꼬뿌니님 친구분 눈을 빛내며 "이제 회 먹어야죠." 한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부터 초장을 준비해 갔었으나 그 때는 점심 먹은 것이 슬슬 효과를 발휘하던 때라 물 말고는 삼키기 힘든 상태다. '빅'에게 '스시' 어쩌구 하면서 물어 보니 몇 마리 가져가겠느냐고 물어 본다. "이거, 이거, 이거" 세마리를 골랐지만 회를 뜰 생각을 하질 않는다. 5분 쯤 지나 "사시미?"하고 물어 보니 그제서야 칼이 없어 안된다고 한다. 주머니를 뒤져 맥가이버 칼을 꺼내 보이며 이거라도 되냐고 했더니 배를 세우고는 금새 회를 떠 준다. 껍질도 벗기지 않고 바닷물이 흥건히 묻어 '회'라고는 얘기하기 힘들다. 

다시, 아무도 선뜻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 배가 말도 못하게 불렀지만 한 점을 초장에 찍어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살이 달짝지근하다. 개구리 엄마가 한 점 맛을 봤고 나머지는 나와 꼬뿌니님과 친구분이 함께 처리를 했다. 

누군가 장난을 치고 싶은지 '또또'에게 권해 보란다. '또또'가 손을 훼훼 젓는다. 추가된 뱃삯에 팁을 50페소 더 줬더니 '빅'이 매우 고마워하는 눈치다. 꼬뿌니님 일행은 맛사지 받으러 간댄다. 


보라카이의 밤 - 1 

레드코코넛으로 다시 돌아온 시각이 대략 여섯 시 쯤. 개구리랑 개구리 엄마는 속에 걸신(乞神)이 들었는지 낮에 그렇게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댄다. 개구리는 이 동네 음식이 맘에 드는지 꼭 밖에 나가서 먹어야겠단다. 미치겠구만. 

화장실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에 햇반 두 개를 데우고 맛김과 냉장고에 넣어 둔 김치를 꺼냈다. 이게 웬걸. 발갛게 익은 김치를 보니 낮에 분명히 배가 욕할만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혀에 단침이 고인다.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남원으로 다시 돌아와 거렁뱅이 차림을 하고 월매를 찾아가자 월매가 속이 상해 이도령에게 찬밥 한 덩이와 김치 조각을 주자 이도령, "밥아 너 본지 오래다!" 하고는 게눈 감추듯 먹는 장면이 있다. 

참말로, "김치야, 너 본지 오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밖에 가서 사먹어야겠다던 개구리도 고소한 맛김에 김 폴폴 나는 밥 한 젓가락과 발간 김치를 한 조각 얹어 주니 군소리 없이 삼킨다. 게눈 감추듯 밥을 먹고 나니 그냥 자기는 아무래도 아쉽다. 니켈로디온(만화 채널) 보겠다는 개구리를 꼬셔서 '문독스'를 찾아 가기로 했다. '스틸 스탠딩 어쩌구'를 시도해 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카운터에 물어 보니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랜다. 얼마나 가야 되느냐고 물어보니 모르겠단다. 뭐, 힘들거야 있나. 여기서 밤중에 남는 거라고는 시간 뿐인데. 

길옆의 가게들도 구경하고 개구리 엄마 사롱도 하나 사고 하면서 쉬엄쉬엄 문독스를 찾아 북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문독스가 보이질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비치로드의 끝인지 길을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다. 젠장, 된장, 고추장. 다시 돌아가야지, 별수 있나. 그런데, 개구리가 배가 고프덴다. 자꾸 어디든 들어 가서 뭐든 먹잔다. '그래,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함함타 그러는데...'라고 생각해보려 하지만, 지 에미 애비는 입에 맞지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이 많은데 이눔은 뭘 그리 잘 먹나 싶은 게 개구리 엄마 표정도 좀 황당하면서 억울하기도 한가 싶다. 

식당과 바가 함께 있는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개구리 혼자 치킨 카레(개구리 혼자서 필리핀에서 닭 열 마리는 먹었지 싶다.)를 시켰더니 쥔장(?)이 조금 서운해 하는 눈치다. 얼른 펼치고 있던 메뉴판에서 칵테일을 두 개 손가락으로 짚어 추가 주문을 하니 그제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간다. 

잠시 앉아 있으려니 하늘에서 잠시 섬광이 번쩍인다. 가게 종업원인양 싶은 사람 둘이서 잽싸게 비닐로 된 바람막이들을 설치하기 바쁘다. 바람막이 설치를 다 마치자 신기하게도 모래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한다. 옆을 보니 개구리가 귀를 꼭 막고 있다. 이눔은 천둥 번개를 엄청 무서워 한다. 진짜 겁이 많다. 애 키우는 데에는 겁 많은 게 좋은 것 같다. 위험한 일은 하질 않으니까. 

개구리 식사와 함께 뻘건 잔 두 개, 초록색 잔 두 개, 도합 칵테일이 넉 잔이 나온다. 뭔 일? 쥔장 "해피 아워."라며 주방으로 사라진다. 칵테일 양도 만만치가 않다. 개구리는 귀를 막고 있으려니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무서워, 무서워. 빨리 레드코코넛 가요."라고 하지만 밥을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니 군소리없이 먹는다. 참 잘 먹는다. 어이가 없다. 

개구리 때문에 조금 빨리 식사를 마치고 다시 레드코코넛으로 돌아 오려니 바람이 시원스레 분다. 음식 가게들은 구멍난 비닐 바람막이로 가게 입구를 가리고 있다. 바닷가에서 이 정도 바람이야.


보라카이의 밤 - 2 

레드코코넛으로 돌아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려니 개구리는 소파에 앉아 만화를 보겠단다. '그래라, 기왕 학교 땡땡이 치고 온 거 니 맘대로 해라. 세상을 다아 가져라!'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 새 개구리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개루리를 들어 침대에 옮겨 놓으려니 개구리 엄마가 나가잰다. '그래라, 니 맘대로 하세요. 니도 세상을 다아 가지세요.'다. 

사롱을 입지않으려 일부러 빼는 개구리 엄마를 설득(?)해서 사롱을 입히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개구리 없이 둘이서 남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혹이 하나 없어지니 훨씬 자유롭다. 비오는 날 둘이서 시내에서 술 한 잔 마시고 돌아 오다 장난 삼아 우산으로 가리고 뽀뽀라도 할라치면 개구리 엄청 부끄러워 하면서 우리에게 투정을 부린다. 그런 놈 없지, 나 아는 놈 없지. 그래 맞다. 세상이 다 내끼다. 개구리 엄마 옆구리를 잡고(어깨를 잡기에는 개구리 엄마 키가 좀 크다. 나와 3cm 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다. 결혼 할 때에도 개구리 엄마는 맨발로 내 옆에 섰었다.) 함께 보라카이의 밤길을 걸으려니 어제 오후에 보라카이 들어올 때의 절망에 가까웠던 생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봄봄바 가까이 가니 경쾌한 댄스 음악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둘이서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걷자니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것 같아도 조금 지나자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쳐다 본다.(아마, '저것들 돌았나 봐.'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 개구리 엄마가 옆에서 "그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한다. ^^ 이것이 또 글을 훔쳐 읽더니 키가 2cm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마구 우긴다. 아니다, 절대로 3cm 차이 난다. 이건 확실하다. 이번에는 '확실하다'는 단어 가지고 시비를 건다. "재 봤나?") 

산미겔 한 병을 들고 걸으면 더 좋겠지만 배가 부를 대로 불러 더 넣을 공간이 없는 것이 아쉽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도 나오는 건데...... 졌다. 그래 2cm 차이 난다. 됐냐? 흥분 가라앉히고 글이나 계속 쓰자. 

탈리파파 시장까지 걷기에는 아무래도 체력이 모자랄 것 같다. 이 시각에도 맛사지 아줌마 한 사람이 "맛사지?"라고 한다. 개구리 엄마는 맛사지에는 별 흥미가 없다. 맛사지 받을 때에는 시원한 듯 하지만 받고 나면 그게 그거란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봄봄바 근처로 오니 개구리 엄마가 "들어 갈까?"라고 묻는다. 나도 제법 망설여진다. '들어가서 한 번 흔들어 봐?' 하지만 안을 살짝 보니 아무리 살펴 봐도 우리 또래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보이질 않는다. "그냥 밖에서 흔들어도 기분 좋은 걸." 옆엣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개구리 엄마랑 둘이서 열심히 흔들며 봄봄바 앞을 지나 왔다. 신난다. 

가시는 분들 꼭 밤 중에 비치로드를 거닐면서 간간이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흔들며 걸어 보시길 아주 강력히 권한다. 정말 재밌다. 신난다. 까짓 '미친 놈' 취급 받으면 어때. 

사실 걔들 우리를 아주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에는 나야 아니지만 키 170에 가까운 개구리 엄마의 좌악 빠진 몸매가 한 몫을 했다. 많이 흔들며 걷는 나보다는 부드럽게 흔들며 걷는 개구리 엄마에게 시선이 모아지는 느낌이었다. 난 팔풀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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