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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필리핀

출발 전, 출발, 마닐라 도착

by 개굴아빠 2012. 12. 17.

(02년 aqua사이트에 올렸던 필리핀 보라카이 자유 여행기를 옮긴 것입니다.)


공항에서 사온 산미겔 수퍼 드라이 마시며 글 쓰는 중. 


출발 한 달 전. 

굳세게 맘 먹고 결혼 10주년(5월 30일) 핑계로 보라카이행을 결심했다. 아직 개구리 엄마랑 개구리는 모른다. surprise trip(surprise party도 있으니 surprise trip인들 없으랴.)으로 하고는 싶지만 개구리 엄마가 학교에 있다보니 그건 힘들 것 같다. 일 주일 정도 전에 이야기 해야겠다. 


반 달 전 

입이 워낙 가벼워서리 결국 개구리 엄마에게 말을 하고야 말았다. '이 남자가 미쳤나'라는 표정이다. 반응이 없다. 그래도 여권 발급 받아야 한다고 하니 주민등록증은 내 준다. 사진 찍어 달랬더니 사진은 이틀 후에나 찍어서 준다. 긴가민가 하는 눈치다. 


일주일 전(월요일) 

웬만한 준비는 끝났다. 오늘도 환율이 내려갔으니 환전은 조금 미루기로 하자. 제일 은행 사이트에서 환전 할인 쿠폰을 인쇄했다. 아쿠아에서도 할인 쿠폰들을 인쇄했다. 


6일 전(화요일) 

환율이 조금 올랐기 때문에 정오쯤 제일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였다. 1,294원.(요즘은 1,250원 이하이다.) 집에 돌아오니 경비실에서 등기물을 찾아가란다. ok항공에서 보낸 항공권이다. 개구리 엄마도 1주일 연가를 받아 놓았다. 


5일 전(수) 

환율이 10원 가량 내렸다. $1,500 환전했으니 하루 사이에 15,000원 정도 손해본 셈이다. 


4일 전(목) 

동생이 수트 케이스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도 개구리 엄마는 짐 쌀 준비도 안한다. 준비가 어딨냐. 오늘도 밖에서 학교 샘들이랑 술마신다고 나더러 짐 대충 알아서 싸랜다. 


3일 전(금) 

허걱! 꼬뿌니라는 아가씨에게서 멜이 왔다. 날짜가 같댄다. 개구리 엄마에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슴이 마구 설렐라 그런다. 넷투어에 예약한 사항이 조금 어긋나고 있다. 아무래도 그쪽에서 처음에 너무 낮게 가격을 부른 모양이다. 개구리 때문에 무조건 엑스트라 베드를 넣어야만 한다고 한다. 


2일 전(토) 

투어 스페이스를 통해 필요한 예약을 모두 마쳤다. 오전 중에 돈도 모두 입금했다. 그동안 모아둔 자료를 인쇄해 하드 커버를 만들어 휴대하기 편하게 했다. 저녁에 퇴근한 개구리 엄마가 동료들이 사준 거라며 커플 티를 꺼내 보인다. 이 나이에 무슨 커플티냐고 얘기하다 여행도 못가고 서거할 뻔 했다. 저걸 둘이 맞춰 입고 가야만 하다니. 꼬뿌니님 얘기를 꺼내려 하니 개구리 엄마가 내 멜을 훔쳐보았다며 다 안다 그런다. -_-;; 


1일 전(일) 

서울 형집에서 하루 자고 출발하려 하였으나, 부처님 귀빠진 날이라 어머니 모시고 절에 가서 절밥 먹느라 힘들 듯. 돌아올 때 비행기 시간 때문에라도 차를 가지고 공항으로 직접 가는 게 낫겠다. 형집에 세워두면 주차료 50,000원 가량이 절약되긴 하지만 말이다. 저녁에 보니 후니유니님의 글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다. 


d Day(월) 

오전 10시에 출발했다. 후니유니님과 통화하고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군데의 휴게소에서 쉬면서 아쿠아에 올린 질문에 대한 답도 살펴 보며 가다 보니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어질 것 같다. 5시 30분쯤 공항에 도착했더니 후니유니님이 기다리고 있다. 꼬뿌니님도 만났다. 마닐라에서 공부한다는 아가씨 한 분이 자기 짐이 무게 오버 된다며 같이 좀 부쳐 달랜다. 

후니유니님과 꼬뿌니님은 먼저 대기실로 들어가고 우리는 조금 개기다 들어갔다. 검색하는 곳에서 맥가이버 칼이 걸렸다. 마닐라 가서 찾으라며 쪽지를 준다. 세부퍼시픽 항공의 내부는 일반 고속 버스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좌우로 2열씩 모두 4열이다. 승무원은 모두 필리핀인이다. 영어와 따갈로그로 방송을 하더니 한국어(?)로 안내 방송도 한다. 옆에서 개구리가 그걸 듣더니 자꾸 킥킥댄다. 

이륙. 진동이 심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근교 도시의 불빛들이 너무 예쁘다. 저녁 비행기는 타보지 않았던 개구리 엄마는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다. 비행기가 평형을 잡자 기내식이 나온다. 개구리는 "치킨 플리즈"라는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얼굴만 벌겋게 달아 있다. 혼자서는 묻지 않아도 "아빠, 치킨 플리즈하고 하면 되지?"라고 하더니. 양념된 치킨 조각 몇 점, 불면 날아갈 듯한 밥알 몇 숟가락, 소금과 약간의 고추로 양념한 무우 몇 조각, 행운의 과자, 빵 한 개 그리고 음료수. 개구리는 맛있다고 잘만 먹지만 음식은 순수 토종인 개구리 엄마는 결국 밥을 다 먹지 못한다. 나는 음료수 대신 산미겔 한 잔, 사약 같은 커피 한 잔.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던 게임을 밥 먹자마자 한다. 준비된 가방은 모두 다섯 개. 마지막 직전까지도 못 건졌다. 개구리가 자꾸 아빠만 쳐다 본다. 그 눈길에 이런 자그마한 일에서조차 능력이 있어야만 하는 아빠로서의 엄청난 중압감을 느낀다. 마지막 아이템은 동전. 사생 결단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크게 휘두르며 광적으로 "here! here!"라고 외쳐댔다. 성공이다. 마지막 가방을 건졌다. 개구리가 너무 좋아한다. ㅋㅎㅎㅎ. 주책스런 부모로 보인들 어때. 개구리는 여행 내내 그 가방을 메고 다녔다. 

승무원에게 카드를 달라고 하니 마분지로 된 카드를 준다. 개구리랑 원카드를 30분 가량 했더니 저녁 먹은 게 다시 역류하려 한다. 뱅기 멀미는 한 적 없는데. 이 카드 때문에 매일 저녁마다 개구리랑 원카드를 해야만 했다. 

공항에 내려 일행들과 다시 접선을 했다. 우리는 이미 입국신고서를 작성했으나 꼬뿌니님과 후니유니님은 어케 써야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자랑스럽게 하드 커버된 인쇄자료를 보여주었다. 후니유니님과 같은 패키지로 오신 연세드신 분의 입국신고서도 써드렸다. 개구리 엄마가 흡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외국인용 줄에 서있었더니 여직원 하나가 대기인이 두어 사람 밖에 없는 domestic으로 가라고 한다. 차례가 되어 여권을 보이자 앉아있던 남자직원 피곤한 표정을 하고 '여기가 외국인용이냐?'고 묻는다. 다른 직원이 이리로 가라고 해서 왔다고 그랬더니 여전히 피곤한 얼굴로 원래 있던 줄로 가랜다. 

개구리 엄마는 내가 필리피노처럼 생겨 그렇다고 내 탓을 한다. 전혀 아닌데. 덕분에 나오는데 20분 이상 손해 보았다. 

짐을 찾고 나오다 맥가이버 칼이 생각나 찾으려 하였으나 보이질 않았다. 어디서 찾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직원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잘 모른다며 조금 기다려 보라고 하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15분 가량 기다리자 그 직원이 다시 나타난다. 손에 노란 봉투를 들고 있다. 고맙다고 하고는 꼬뿌니님과 후니유니님이 나간 곳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찾았지만 넷투어에서 나오기로 한 직원이 보이질 않는다. 후니유니님의 가이드가 가져온 차량에 같이 타고 가잔다. 하지만 우리 숙소는 마카티이기 때문에 대신 혹시나 해서 적어온 넷투어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넷투어 직원이 뉴월드 로비에 있단다. 후니유니님의 가이드가 택시를 잡아주는 친절까지도 베풀어 주었다. 개적으로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표시한다. 택시에 짐을 들어준 가무잡잡 마른 남자가 기념품을 하나 달랜다. 한국돈이라도 괜찮단다. 500원을 줄까하다 팁이라 생각하고 1,000원 짜리 한 장을 주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팁치고는 엄청나게 준 셈이다. 40페소나 되니 말이다. 

택시가 길거리를 달렸지만 아직까지는 외국이라는 느낌이 들질 않는다. 뉴월드에 도착하니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불만을 완곡하게 표시하였더니 현지 랜드사에는 책임이 없고 어쩌구 한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로 따졌더니 별 말을 못한다. 방은 그다지 큰 것은 아니다. 엑스트라 베드를 놓고 나니 꽉 찬다. 배가 무지 고팠지만 새벽 두 시에 먹고 자는 것도 그렇고.

개구리는 금새 잠이 들었지만 개구리 엄마와 나는 배가 고파 잠이 쉽게 오질 않는다. 두시 반쯤 개구리 엄마는 잠이 들었지만 뱅기 안에서 사약 같은 커피를 마신 나는 다섯 시 경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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