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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유럽/이탈리아

로마 시내 관광 - 1

by 개굴아빠 2013. 2. 6.

서유럽 여행기부터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사진 백업용이다보니 사진이 좀 많다.

어쩌다 참고삼아 들어오는 분들은 스크롤의 압박은 견디셔야 할 듯하다.

가족 여행으로 갔던 서유럽 여행기 블로그는 순전히 가족용이다.

덧붙여 이건 2010년 여행기인데 네이버에 쓰던 것을 네이버 정책이 맘에 안들어 이글루에서 다시 쓰다가 이글루는 정치적 편향성이 너무 강해 티스토리에서 다시 완전히 새로 쓰는 중이다.



사진이 많아 적어도 두 개 이상으로 포스트를 나누어 써야겠다.


이 포스트에서는 천사의 성, 전차 경기장,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등에 대해 소개한다.



오전에 바티칸 시국 관광을 마치고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었는데 아마도 맛 억수로 없는 중국식이었지 싶다.) 로마 시내 관광을 시작했다.


로마 시내의 명소들은 아래 지도 외에도 많은 곳들이 있다.


아래에 나와있는 명소들 중 진실의 입을 제외하고 모두 가보았으나 대부분 수박 겉핥기로 생각하면 되겠다.


콜로세움도 겉모습만 보았고 포로 로마노도 팔라티노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한 여름의 로마가 덥기도 덥고 짧은 시간 내에 둘러보아야할 곳은 많다보니 어쩔 수없이 벤츠 투어를 하게 되었다.


승용차가 아니라 승합차인데 승차감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1인당 60유로니 대략 7만원 가까운 돈이다.


우리 가족 세 명이서 하루 종일 택시를 대절해도 그렇게는 안들지 싶은데 말이다.


www.worldtaximeter 라는 사이트에서 콜로세움(1번)부터 포로 로마노(3번)까지 택시 요금을 계산해보니 약 8유로가 나온다.


택시비가 우리 나라보다 4~5배 비싸다고는 해도 오후 잠깐(3 시간 정도) 사용하는데 50만원이라니.(한 차에 6명이 탔던 것 같다.)


참고로, 벤츠 투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벤츠 투어를 하는 사람들에 비해 관광 명소들 중 두 세 곳 정도는 못 보게 된다고 한다.


패키지 여행에서는 어쩔 수없는 필수 선택 사항에 가까운 것이니 이 정도에서 통과.






아마 이 골목에서 점심 식사를 했지 싶다.


식사는 기대를 할 게 못 된다.


그냥 에너지만 공급해주는 것일 뿐.


식사 후 천사의 성까지는 걸어갔다, 바티칸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까.




뒤쪽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천사의 성(Castel Sant' Angelo)이다.




천사의 성 입구로 가는 다리인 천사의 다리 위의 대리석상.




대리석이니 이 정도의 섬세한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천사의 성은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 등장하여 더 유명해졌는데 이날 가보는 곳들 중 몇 곳이 이 소설과 관계가 있는 곳이다.


천사의 성, 카스텔 산 안젤로는 로마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빅토르 엠마뉴엘 2세(Victor Emmanuel II bridge)의 다리 근처에 우뚝 서 있는 성곽건물로 바티칸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 현재는 많이 변형되거나 손상되어 원래의 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하드리안 황제의 통치기인 AD 130년에 그의 마우솔레움(능묘, mausoleum)으로 만들어졌으며, 카라칼라 시기까지 왕족들의 유적지로 이용되었다. 271년 아우렐리안 황제의 통치기에 성곽 공사를 하였으며, 11세기에 꼭대기에 천사가 있는 탑이 추가로 공사가 되었다. 


1277년에 교황이 거주할 수 있는 숙소를 추가로 공사를 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 성이 '천사의 성'으로 불리운 것은 590년부터이며, 성위에 천사가 나타나서 당시에 창궐하던 페스트의 종말이 올것이라는 것을 예고한 데서부터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출처:다음)







석상(주석상?)처럼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이 사람의 사진이 인터넷에 제법 있는 것을 보면 이 양반도 이 자리에 제법 오래 있었던 모양이다.





벤츠 승합차를 타기 바로 전인데 천사의 성에서 보면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이 정면으로 보인다.


벤츠를 타고 처음 간 곳은 대전차 경기장이었다.










영화 "벤 허"에 나오는 전차 경기도 이런 곳에서 했다고 한다.



다음 장소로 걸어서 이동하면서 본 길 건너편의 원형 건물도 이름있는 유적인 모양이던데 기억이 아예 안남.


그 뿐만 아니라,





여기는 성당 안쪽인데 여기도 어딘지 아예 기억이 안난다는 사실. ㅠㅠ


그 다음 방문한 곳은 포로 로마노.


예전에는 무료였는데 입장료가 생겼다고.


그래서는 아니고 우리 일행은 캄피돌리오 광장 위편에서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 보는 것으로 끄읕.


패키지 관광객의 비애. ㅠㅠ


이날 관광을 하면서 패키지는 더 이상 다니지 않을 거라고 결심을 굳히게 된 결정적 요소들이 이것 외에도 더 있었다.



포로 로마노 : 베니치아광장(Piazza Venezia)와 콜로세움(Colosseo)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상업,정치, 종교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였다.

로마의 중심지로써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년의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바실리카 에밀리아(Bcilica Aminlia)와 시저 신전(Templum Caesar), 원로원(Curia), 개선문,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새턴신전, 바실리카 율리아, 베스타신전,베스타신녀의 집의 흔적,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 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출처:다음)




아, 이제 그만하고 카메라 보면서 찍자고. ㅋ


베네치아 이후로 계속되는 분위기 있는 사진 찍기인데 오른쪽에 있는 다른 사람의 팔은 어쩔. ㅡㅡ;;






많이들 하지는 않아 보이는 동전 던져서 잔해 위에 올리기.





재미있는 사진이 될까 싶어 시켜봤는데 별로 재미있지 않게 된 사진.


포로 로마노를 먼 발치에서 내려다보고 뒤쪽으로 돌아나가면 바로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연결된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고대 로마제국의 시작으로 로물로스가 로마제국을 건국한 후, 쥬피터의 신전을 세웠던 고대로마의 중심지였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에 황폐해진 이 언덕에 생명을 불러일으킨 것이 미켈란젤로이다.또한 광장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황제의 기마상이다. 

이 로마황제상은 여기에서부터 남쪽으로 수킬로미터가 떨어져있는 산 조바니 인 라테라노 교회(San Giovanni Laterano)의 근처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다고 한다. 중세시대에 로마황제의 동상은 기독교인들의 손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으나 이 동상만이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그뒤에 이 동상은 후세에 기마상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캄피돌리오라는 뜻은 수도라는 캐피탈(Capital)의 의미이다. 
정면에서 볼 때 우측 건물은 콘세르바토리 궁(Palazzo dei Conservatori)이며 왼쪽은 누오보 궁(Palazzo Nuovo)인데 현재는 둘다 카피토리노 박물관(Museo Capitolino)이란 명칭으로 고대 로마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다. 광장 정면의 건물은 고대 로마의 폐허위에 12세기경에 세나토리오궁을 세운 것인데 현재는 로마의 시의회와 시장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캄피돌리오 광장, 좌/우의 박물관, 시청사 앞의 분수, 꼬르도나타(Cordonata) 계단 등은 모두 미켈란 젤로에 의해 설계된 것들이다. 고대로마시대에는 시청사의 우측의 좁은 길이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이 캄피도리오 언덕을 연결하는 길로 되어있었다.(출처:다음)









캄피돌리오 광장을 내려가 베네치아 광장까지는 도보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이동 도중 우측으로 폐 건물이 있었는데 로마 제정 당시의 서민 가옥이었다나?


인술라(insula)는 '섬'이란 뜻의 고대로마의 서민들이 살던 다층 고동 주택을 일컫는 말이다.

거대한 통일기념관이 세워지면서 캄피돌리오 언덕 주변의 중세 및 르네상스 건물들이 많이 헐려나갔는데, 산타 마리아 인 아라 첼리 성당 아래에서 조그만 성당을 철거했을 때 인술라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서기 2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6층 규모에 약 380여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이곳에서 언제까지 사람들이 살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것이 이 인술라 유적에 관한 모든 정보이다. 서기 350년경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에는 개인 소유 단독 주택은 1782채밖에 되지 않았고, 인술라는 4만 6602동이었다고 한다. 도시의 인술라는 주로 임대용이었다. 로마는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인하여 땅값이 비쌌기에 임대료도 매우 높았다. 인술라는 일반적으로 6,7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은 작업장이나 상점으로 이용되었는데 이는 현재 유럽도시의 건물들과도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인술라의 높이는 건물의 구조적 안정과 도시 미관 때문에  이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도시계획법에 의하여 70모라식 피트(약 20.8m), 즉 6,7층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초를 너무 얕게 파거나 벽을 너무 얇게 만들어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즉 인술라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출처:주철민의 역사공부방)




베네치아 광장 :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lo)에서 남쪽으로 늘어선 코루소거리(Via del Corso)의 하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로마 교통의 중심지로 6개의 주요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광장 정면에 "하얀 웨딩케이크"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이 있다. 


187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엠마누엘 2세를 기념에서 건설되었으며, 1911년에 완성된 네오클래식양식의 건물로 유명하다. 엠마누엘 2세국왕의 기마상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전사의 묘가 있다.왼쪽에는 베네치아 궁전이 있으며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출처:다음)





베네치아 광장은 교통이 복잡하여 행인들 틈에서 대충 훑어 보는 것으로 끝.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도 겉 모습만 구경하는 것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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