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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맛있는 음식의 기준이란......

by 개굴아빠 2012. 12. 14.

정기구독하는 시사주간지의 추석 부록으로 "우리 음식 맛의 기준"이란 제목을 붙여 전국의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책자가 딸려왔습니다.
 
아직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글을 읽다보니 저자의 연배가 저와 거의 같고 고향도 이쪽인데다 맛에 대한 나름의 아집도 있는 터라 관심있는 지역부터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 책에서 제일 먼저 소개된 음식이 초당두부인데 이 음식은 맛에 대한 저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 주었던 음식이라 이것과 연관지어 몇 자 글을 적어볼까 합니다.
 






[ 퍼 온 사진입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시 삭제하겠습니다. ]

 
지금은 좀 뜸해졌지만 아이가 크기 전까지는 매년 겨울이면 동해안을 타고 올라가 미시령, 대관령, 한계령 중 하나를 넘어오는 겨울 여행을 즐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주로 처가쪽 식구들과 함께 다녔었는데, 어디서 잔다, 어디서 뭘 구경한다는 계획도 없이 그냥 대충 여행을 하다 다니는 것이 지겨워지면 귀가를 하는 식의 여행이었죠.
 
어느 해 겨울, 여행에서 늘 지나치던 강릉이었지만 그 유명하다는 초당두부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침 우리 가족끼리만 여행을 떠난 터라 무작정 초당동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제법 많은 수의 두부 전문 가게들이 있기에 어렵게 정보를 수집하여 제일 맛있다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 두부 찌개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어느 집에서나 해먹는 아주 평범한 모양새의 음식.
 
유명하다는 음식이었기에 뭔가 특별한 모양새나 맛을 기대하고 갔지만 기대는 보기좋게 빗겨가고 말았습니다.
 
먹고 나와 차를 운전하며 가는데 참 허무하더군요.
 
이렇다할 감상평조차 생각이 나질 않을 정도의 평범하기 그지 없는 맛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허탈한 맘으로 20분 정도 운전하며 갔을까, 갑자기 머리 속을 스쳐가는 한 가지 생각에 무언가를 깨닫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찾아다녔던 전국의 맛있는 집이라고 하는 음식점들(요즘같이 방송이나 신문, 블로그들에서 떠벌리는 맛도 없는 맛집 말고 진짜 맛집들)에서 그리 큰 감흥을 얻지 못했던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맛있는 음식"이란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린 음식들이라는 점,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이라는 점, 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손맛이 깃든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해남 천일식당의 떡갈비 맛이 초당 두부의 맛과 함께 이해가 되더군요.
 


[ 해남 천일 식당의 떡갈비 : 퍼온 사진 ]

 
작년에 캄보디아의 시엠립을 갔을 때는 북한에서 운영하는 평양냉면관이라는 음식점엘 가보지 못했었기에 올해 여름 아들과 함께 갔을 때는 가보기로 마음먹고 몇 가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인터넷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음식에 대한 평가나 공연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낮게 나와 있었습니다.
 
"음식이 맛이 없다, 밋밋하다, 공연도 시골 장터 수준이다."라는 얘기들이 주류였습니다.
 
특히, 주부들로 생각되는 사람들의 블로그에서조차 음식이 맛이 없다라는 평을 많이 볼 수 있었기에 가는 것을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들더군요.
 
그래도 여행에서 가져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다른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고 아들과 함께 가서 냉면만 먹고 오기로 하고 가보았습니다.
 
여기서 글의 첫 머리에 소개한 책의 저자가 쓴 책의 서문 중 첫 부분을 인용해볼까 합니다.
 
"나는 맛집이라는 말을 혐오한다. 한국에서 맛집 정하기는 개나 소나 다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능, 오락, 시사 프로그램 등에서 작가를 하다가 어쩌다 맛집 방송의 작가가 된 20~30대의 젊은이의 미각을 믿을 수 있는가, 그들은 맛집으로 선정된 식당의 음식을 먹어보지도 않는다. 순환보직으로 음식 담당이 된 초보 신문기자의 미각은 또 어떤가, '대포 카메라'만 믿고 사진발로 죽이려 드는 블로거의 미각은 신뢰가 가는가.  그들이 정해주는 맛집에 당신의 미각을 맡길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평양냉면관의 물냉면과 비빔냉면은 충분히 맛있었습니다.
 
물냉면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저에게도 "맛이 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을 들게할 정도로 맛이 있었습니다.
 

10여년 전 마산 어시장 쪽에 "ㅇ장군 갈비"라는 음식점이 생기고 한 때 유명세를 탄 적이 있었을 겁니다.
 
처제가 정말정말 맛있게 먹었다면서 같이 가자기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이건 뭐...... 설탕에 고기를 버무려 놓았더군요.
 
배나 양파즙 등의 자연 재료로 단 맛을 살리기 어려웠다면 그나마 조청이라도 쓸 일이지 아예 설탕 국물이라니......
 
평양냉면관의 공연도 식당에서 볼 수 있는 공연치고는 꽤 괜찮았습니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보려면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장소로 가야하겠지요.
 
뭔가 특별하거나 톡 튀는 자극적인 공연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는 공연일 수도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화학 조미료로 범벅이 되거나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는 요즘 음식들에 길들여진 요즘 젊은 사람들의 혀에는 자극을 줄 수 없는 맛일 겁니다.
 
냉면을 먹으면서 그 맛에 매료되어 추가로 시켜본 소고기 구이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물론 블로거들은 대부분 맛이 없다는 평가였었지요.
 
나오기 직전에 예쁘장한 아가씨에게 슬쩍 말을 붙이며 조미료를 쓰는지 물어보니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새는 느낌입니다만 저는 요리를 정말 잘한다는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나물을 잘 무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맛있는 요리"들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맛있는 나물"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나름 요리를 잘한다는 집사람에게도 제가 유일하게 하는 음식 투정이 나물 맛에 관한 것입니다.
 
채소를 "적당히" 데치고 "적당히" 간을 한 후 "적당히" 버무려 만드는 나물이야말로 맛을 내는데 있어 중용의 솜씨를 발휘해야 하는 요리 기술의 끝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이야 단백질이 풍부하니 아이들도 나물을 먹을 일이 거의 없는데다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들 습성상 가족들의 식탁에도 나물이 올라가는 일이 별로 없는 집들이 많을 겁니다.
 
성장 촉진제로 키운 닭, 돼지, 소들을 화학 조미료로 버무려 내어놓는 음식에 길들여진 요즘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야만 맛이 있는 나물의 맛을, 또 그 나물을 만드는 어머니의 손맛을 알 수 있을까요?
 
 
추석 뒷날이니 오늘 아침 식사는 당연히 추석 음식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무치신 배추 나물을 한 젓가락 집어 입 안에 넣으면서 그 속에서 살짝 풍겨나오는 참기름의 고소함과 가볍게 아삭거리는 배추의 식감과 특유의 풍미를 더해주는 진간향의 향에서 "맛있는 음식은 세상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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