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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유럽

프롤로그......

by 개굴아빠 2016. 12. 22.


한 잔 마셔 살짝 술기운이 올랐을 때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올해 안헤 어무이 모시고 유럽 갈끼다."

더 미루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팔순 잔치를 1년 정도 남은 설날이었지 싶다.

그전부터 막연하게 어머니를 모시고 유럽을 갈까하는 생각을 수시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말을 꺼내기 1년 전 어머니께서 사우나에서 넘어지시는 바람에 발목 골절이 왔고 1년 동안 꾸준히 회복 운동을 했지만 걸음이 전보다는 조금 부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가족들의 반응은 들은 듯 만 듯.

'저기 또 술 한 잔 처묵고 택도 아인 헛소리 하는갑다.'였겠지.

솔직히 말해 혼자서 어머니 모시고 가려니 고려할 게 제법 많았었다.

숙소라든지 이동 수단이라든지 몸이 불편하실 때에 대한 대비라든지......

2년 전 태국 갔을 때 어머니께서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긴장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외국 음식에 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는 점은 큰 도움이 되는 사항이었다.

그렇게 나름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던 중 반가운 정보를 듣게 되었다.

갑자기 닥친 병마로 인해 휴직을 하고 요양을 하던 동생이 조카딸과 함께 유럽을 갈 거라고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그라믄 내가 인솔하고 같이 가는 기 어떻겄노?"

"그거 개안은 생각 같은데......"

"그럼 어무이 여행 경비는 반반 부담. ㅇㅋ?"

"헐......"

"어차피 내가 찍사에다 가이드에다 드라이버 할 거 아이가. 여행 경비도 패키지에 비해 적게 들끼고."

"아라따."


이렇게 모의를 끝낸 오누이는 다른 가족들 몰래 4월 초에 비행기 티켓부터 끊어 버렸다.

일은 일단 저질러 놓아야 해결이 되는 법.

비밀 유지를 하긴 했지만 일부러 슬쩍슬쩍 정보를 흘렸더니 드디어 6월 초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니 수정이하고 어무이 모시고 유럽 갈끼라면서? 택도 아인 짓 하지 마라.  어무이 발도 안 좋으신데 몬간다."

"뱅기표 벌써 끊었는데? 취소 안되는데."

그후로도 다른 가족들의 방해공작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급기야 자유여행의 대가이신 외삼촌께 자문을 구해 가부를 결정하기로 하고 외삼촌께 전화를 드려 여쭤보았더니,

"개안타, 우진아. 내가 같이 댕기는 사람들이 모두 여든 가깝거나 넘은 할배, 할메들 아이가. 다들 잘 댕긴다. 어무이 모시고 가도 아무 상관엄따."

시는 거다.

그제서야 어쩔 수없이 다른 가족들도 포기를 하고 승낙을 해 주었다, 어차피 승낙안해도 갔을 거지만.


비행기 티켓을 끊은 후에 이미 동생은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께서는 꾸준한 운동과 물리치료를 병행하시면서 체력도 함께 기르고 계셨기 때문에 출발 직전에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하루 두 시간 정도는 걷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 정도면 된 거다.

자유 여행에다 차를 렌트해서 이동할 거니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

어머니 체력 상태 살펴가며 여행을 진행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준비 과정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이번에는 여행 계획 수립에 큰 힘을 들이지 않았다.

동생이 절반 이상 일을 맡아주었기 때문에 나는 전체 일정 계획과 차 렌트 부분, 그리고 맛집 몇 곳 정도만 살피면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멋지게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 하나, 왜 진작 어머니를 모시고 나서지 않았을까 하는 것.

여행에 대해 하고픈 다른 말들도 많지만 앞으로 올리게 될 포스트에서 차근차근 쓰기로 하자.

이번 여행에 대한 평가는 타이틀 이미지에 써두었다.

"철들고 나서 제일 잘한 일"



다시 그린델발트를 거닐 거라 확신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