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 스리랑카/상해

흐린 날의 와이탄, 빛으로 가득 찬 예원

by 개굴아빠 2020. 10. 19.

 

"아니, 거길 왜 가냐고? 난 사람이 만든 것에는 관심이 없다니까."

 

"편식하기는...... 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보면 안돼? 앙코르왓은 사람이 만든 거 아니냐?"

 

여하튼 중국이 맘에 안드는 친구는 와이탄의 야경도 굳이 보고 싶지 않단다.

 

자연 경관을 나도 더 선호하긴 하지만 여행이란 것이 어디 그런 것만 있나?

 

주가각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상해 시내로 돌아와 예원 지하철역에 내려 와이탄까지 가며 내내 투덜거리는 친구를 등 떠밀듯 하며 겨우겨우 와이탄에 도착했다.

 

"아 놔, 야경 멋있다니깐. 보고 가자니까."

 

"아, 됐어. 이게 뭐 볼 것 있다고. 그냥 가자."

 

 

증명 사진도 못찍고 이 사진 한 장만 찍고 돌아서야만 했다. ㅠㅠ

 

저기에 불 들어오면 제법 볼만한데......

 

뭐, 날이 흐리고 공기질도 안좋아 별로이기는 했다.

 

추운 거리를 걸어 다음 목적지인 예원으로 향하는데 이미 날이 어둑어둑한 상태다.

 

10년 전 여름에 보았던 예원을 생각하며 거의 절망적인 예감에 가득차 예원을 향해 걸었다.

 

어둑어둑한 길거리에 침침한 불을 켜놓고 짝퉁 또는 저급한 학용품을 팔고 있는 골목을 지나는데 더 할 말이 없어지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그나마 약간은 화사해 보이는 축제와 관련된 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모퉁이를 돌아섰더니......

 

그렇다, 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예원 앞 길의 상가에 화려한 등들이 옛스런 느낌의 건물들과 함께 밤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골목길마다 걸린 색색의 등.

 

예원 앞의 상가에 들어갔더니 옛날과는 달리 나름 퀄리티가 괜찮아 보이는 제법 중국적인 기념품 가게들도 있고 한데 그것을 보는 친구의 표정이 아주 밝아 보였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왜 이래야 되는 거지?

 

 

예원은 입장 시간이 넘어 들어갈 수가 없었고 친구도 굳이 들어가려하지 않아 들어가진 않았는데 구곡교로 사람들이 잔뜩 진입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 걸어가보니 여기도 별천지였다.

 

"사람이 만든 거 싫어한다면서?"

 

"집사람하고 애들에게 이런 것도 있더라 하고 보여주려고 사진 찍은 거다."

 

ㅡㅡ;;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상해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한 후 저녁 식사를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마지막 밤이니 역시 술을 한 잔 해야하고 거기에 맞는 적당한 안주를 사려고 했더니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 등의 매장은 물론이고 안주될만한 것을 살 곳이 없었다.

 

슈퍼마켓에는 뭐가 없나하여 들어가 안주를 찾다보니 공부가주가 세상에나... 5,000원 정도의 가격이다.

 

우리 나라 중국집에서 500ml 하나 마시려면 30,000원 이상을 주어야 하는데 오천원이라니.

 

얼른 집어들고 보니 맥주 냉장고에는 칭따오 생 캔맥주가 보여 그것도 겟.

 

안주가 문제였는데, 무작정 길거리의 매우 중국스러운 집으로 들어가 주문을 했다.

 

당연히 말이 안통하니 손짓발짓으로 할 밖에.

 

요리 중에서 시그니처 메뉴로 보이는 것을 가리킨 후에 포장 되느냐고 하니 포장이 된다는 것 같다.

 

몇 가지 묻긴 했는데 서로 말이 안통하니......

 

"야, 사진으로 봐도 뭔지 모르겠는데 너 먹을 수 있겠냐?"

 

"당연하지. 외국 갈 때 김치 한 번 가져가본 적 없는 나야. 너는 괜찮겠냐?"

 

"말이라고?"

 

정체를 모르는 요리 한 가지를 시켜 놓고서 머스마 둘이서 허세만 잔뜩 부리다 그냥 주는대로 숙소로 가지고 마지막 술자리를 벌였다.

 

 

요리의 정체는 오리.

 

부담스런 향도 없고 맛도 나쁘지 않아 먹을만은 했지만 나는 오리는 싫어하는 터라 맛만 보고 거의 패스.

 

아, 맥도날드에서 맥주 안주로 치킨도 샀나보다.

 

한국에 있는 후배와도 화상통화를 하며 신나게 먹고 마시긴 했는데 여기서 둘이 살짝 오바.

 

마지막 날인데다 뒷날 비행기도 오후 비행기라 마구 마시다 공부가주 한 병 다 비우고 다시 내려가 빼갈 한 병 더 사고 (맥주도 더 산 것 같은데 이건 기억에 없음) 올라와서는 그것까지 싹 비운 후 취침.

 

뒷날 아침 식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에피소드 하나 추가.

 

공항에서 핑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겨우 체크인 후 라운지로 가서 쉬려고 했는데 아......

 

터미널을 이동하는 셔틀 열차를 타고 문이 닫히자마자 친구 왈

 

"야, 너 홍차 산 건?"

 

그랬다, 선물로 산 스리랑카산 홍차 박스를 검색대 통과 후 챙기지를 못하고 그냥 두고 온 것이었다.

 

다행히 다시 되돌아갈 수 있어 검색대로 가 찾긴 했는데 시간이 30분 이상 걸려 라운지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질 못했다.

 

나는 국수 한 그릇으로 해장을 했고 친구는 그조차도 안 먹었지 싶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검색대에 놔두고 간 물건 찾는 곳에 물건들이 잔뜩 있었던 건 안비밀.

 

상해 - 부산 항로에서는 닭모이 같은 기내식이 다시 나왔지만 완전 꽐라에서 겨우 벗어났던 우리에겐 차라리 그게 더 다행이었다.

 

 

한국에 도착하니 상해에서 돌아다니던 이틀 째 상해 디즈니랜드에서 감염자 가족이 단체로 다니고 어쩌고 하는 기사가 올라왔었다.

 

다행히 출근에는 지장이 없었는데 일주일만 여정이 늦춰줬었다면 2주 가량 푹 쉬었을지도.

 

코로나19로 인해 여행길이 거의 막힌 상태라 이번 여행이 친구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 여행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다시 우울해진다.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말이 맞지 않길 바라는 수 밖에.

'2020 스리랑카 > 상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흐린 날의 주가각  (0) 2020.10.19
다시 상해로  (1) 2020.10.07